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기능이수자 선정 법우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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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얇은 사 (紗)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 (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 〈조지훈의 '승무 (僧舞)' 가운데〉 승무를 우리는 춤보다는 문학으로 먼저 알았다.

승무, 스님의 춤이라는 이름도 그러하거니와 '파르라니 깎은 머리' 라는 싯구는 '승무는 스님이 추는 춤' 이라고 일러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작 스님이 승무를 춘다고하니 놀랄만한 일이란듯이 여기저기서 소란스럽다.

대전 현불사의 법우 (法雨) 스님 (49) 이 그동안 수련해온 승무를 펼쳐보이는 공연을 갖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갖가지 반응들이 터져나온 것. 대견스럽다는 이도 있고 승려가 경박하게 가무 (歌舞) 를 즐긴다는 노승 (老僧) 들의 핀잔도 만만찮다.

어쨌든 춤판에서나 불교계에서나 모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아닌 모양이다.

이쯤되다보니 일반인의 머리 속에 각인된 승무에 대한 정의는 한줌 재처럼 바람에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해 본다.

승무가 스님이 추는 춤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인가.

승무는 법고춤이나 바라춤처럼 절에서 추는 의식무 (儀式舞)가 아니라고 한다.

살풀이나 입춤과 같은 속세의 민속춤의 하나다.

장삼에다 어깨에 두른 붉은 가사가 그럴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그저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춤일 뿐이라는 것. 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을 찾아보면 '옛부터 승무를 추어왔던 사람은 스님이 아니라 광대들이나 소리꾼들' 이라고 적고 있다.

승무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선 중엽 포교수단으로 승무를 추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황진이가 지족 (知足) 선사를 유혹하려고 춘데서 비롯되었다는 설 (說) 도 아울러 소개되고 있으니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얕은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쯤에서 승무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이제는 법우스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왜 승무를 추는가 말이다.

지난 5일 대전 우송예술회관에서의 공연에 앞서 법우스님에게 사연을 들어봤다.

첫마디가 "부처님의 뜻을 말씀으로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는 이들에게 마음과 마음으로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춤으로 공감을 일으키는 것도 훌륭한 포교의 하나" 란다.

그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반기는 일도 아닌 춤으로 포교를 하겠다니. 여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춤의 길을 걷고자 했으나 완고한 홀어머니의 반대로 뜻을 접어야했던 젊은 시절의 꿈 때문이다.

전통춤의 길로 들어선 다른 춤꾼들처럼 법우스님도 굿판에서 우리 춤에 매료당했다.

고향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듣게 된 장구소리에 이끌려 국악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5년동안 춤을 배웠다.

직업무용수가 될 생각까지 했지만 홀어머니의 반대가 워낙 심해 춤에 대한 꿈은 접어둘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가 세상 인연을 끊고 입산한 것은 75년. 아이러니하게도 춤을 접하기가 극히 어려운 절에 와서야 다시 춤꾼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80년 영산재 (靈山齋) 보유자 (인간문화재) 인 송암 (松岩) 스님 밑에서 수행의 하나로 범패 (梵唄) 를 배우면서 불교 의식무인 법고춤과 바라춤, 나비춤을 자연스레 익혀 마음에만 품고 있던 춤에 대한 사랑을 실현시키게 된 것이다.

법우스님은 승려로는 처음으로, 또 유일하게 지난 9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로 공식 지정됐다.

승무부문 보유자인 이매방씨를 만나러 매주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6년을 보낸 끝에 맺은 결실이다.

많은 민속춤 가운데서도 특히 승무에 정진해 이수자까지 된 데에는 역시 승려라는 신분이 작용했다.

법우스님은 "절집 안에 있다고해서 찬란한 불교예술이 승려만의 것이 아니듯이 삶의 희노애락을 담은 민속춤 역시 속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 두가지를 승려의 신분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아우르는 것이 춤을 아는 스님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속춤의 연습은 서울연습실에서만 한다.

사찰이라는 엄숙한 공간에서는 승려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법우스님은 이번에는 민속춤만으로 공연을 가졌지만 내년 초파일 즈음에는 불교예술까지 함께 곁들인 공연을 서울에서 꾸미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밝혔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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