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돌의 역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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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결승 2국> ○·이세돌 9단 ●·황이중 7단

제3보(37~50)=힘 있는 돌. 동시에 유연하고 탄력적인 돌. 어떤 행마로 이런 돌의 모습을 그려 내느냐. 힘을 위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면 좋겠지만 자칫 비효율로 흐르게 된다. 상대는 콘크리트 옆에 얼씬도 안 할 것이고, 결국 콘크리트는 죽은 콘크리트로 끝나고 만다.

황이중 7단이 37로 젖혀 집을 취한다. 살짝 공격도 겸한 수. 이세돌 9단은 지체 없이 40으로 받아둔다. A로 나오면 끊어지는데도 이렇게 뛴 것이 소위 유연하고 탄력적인 행마. 37로는 ‘참고도’ 흑1처럼 중앙 쪽에서 압박할 수도 있었다. 백2엔 흑3으로 막아 매우 두터운 모습이다. 흑 모양에 힘이 넘치는데 왜 이렇게 두지 못했을까. 발이 느릴까 걱정한 것이다. 두텁지만 조금이라도 느리면 비효율의 위험이 있고 집에서 뒤지게 된다. 두터움이냐, 비효율이냐. 그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해 판단이 어렵다. 더구나 이 판처럼 큰 승부에선 몸의 모든 감각은 실리(37, 41) 쪽으로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 여파로 흑의 중앙이 떴다. 공격당할 돌도 아니지만 산 것도 아니다. 이세돌 9단은 그 돌을 멀리서 응시하며 50으로 굳힌다. 46에서도 이세돌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리고 50 역시 정중동(靜中動)의 유유한 자세다. 집에서 뒤진 듯한데 그냥 돌의 마음에 순응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이 컨디션이 좋을 때의 모습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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