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꽃샘추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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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봄꽃이 활짝 피어 오를 것 같더니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세력을 회복해 추위를 몰고 오면서 봄을 더디게 할 때 ‘꽃샘추위’라 한다. 풀어 보면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로 운치 있는 표현이다. 잎이 나오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라는 뜻으로 ‘잎샘추위’라고도 일컫는다. 이때의 쌀쌀한 바람은 ‘꽃샘바람’이라고 한다.

봄추위를 중국에서는 ‘춘한’(春寒), 일본에선 ‘하나비에’(花冷え)라고 부른다. ‘춘한’은 글자 그대로 봄추위를 뜻하는 단순한 말이다. ‘하나비에’는 ‘꽃추위’ 정도로 비유적 표현이긴 하지만 단순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우리의 ‘꽃샘추위’는 추위를 의인화한 것으로 시심(詩心)이 가득 배어 있는 말이다. 우리말이 시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봄은 왔으나 꽃샘추위로 봄 같지 않게 느껴질 때 ‘춘래불사춘’이란 말도 종종 쓰인다. 한나라 원제(元帝)의 후궁으로서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족에게 끌려가는 가련한 처지를 빗대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이라 읊은 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랑캐 땅에는 꽃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답지 않다는 뜻이다. 고달픈 인생살이를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주로 사용된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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