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 칼럼]신물나는 '비방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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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3金과 3金정치에 대해서는 국민의 대다수가 염증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얼른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그러면서도 심지어 같은 여론조사에서도 3金중의 한 사람인 DJ가 비 (非) 3金인사들을 모두 제치고 여유있게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인지도 면에서나 정치경력 면에서 DJ에 비해 열세일 수밖에 없는 경쟁자들이라서 초기엔 뒤처지는게 오히려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아니지 않은가.

여론조사에서 DJ가 1위를, 그것도 2위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로 1위를 지켜온게 그 얼마동안인가.

3金에 신물이 났다면서 그래도 1위는 DJ다? 이 모순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전자들의 정치적 함량미달 때문이 아니라면 선거전략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결과며 DJ 1위는 그 반사이익일 것이다.

'3金청산' 을 부르짖으면서 스스로는 3金정치의 행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겉으로는 '세대교체' 를 외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자신들이 '777' 이라고 비아냥거리는 70대 노정객들을 뺨칠만한 정치적 술수와 배신을 서슴지 않았다.

'3金청산' 이 단순히 3金은 정치무대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군림했으니 이제는 그만 물러나고 내가 좀 그 무대 위에 서야겠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인물의 교체보다 '3金' 으로 상징되는 낡고 추한 정치행태의 청산에 궁극적인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또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전략을 짰는지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에서부터 되고 난 뒤 경쟁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정치행태가 적어도 국민이 보기에는 과거의 정치행태와 다를 바를 찾기 어려웠으니 그래가지고는 노회한 DJ를 압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대교체' 론도 그렇다.

세대교체론이 50세 이상은 늙고 때묻었으니 이제는 40대가 나라를 맡겠다는 식의 단순한 생물학적 패가르기는 물론 아닐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정치는 새로운 비전과 정치감각을 지닌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세대교체론의 본질일 것이다.

그런데 공개적인 정치적 약속을 하루 아침에 저버렸는가 하면 신당을 만들자마자 3金정치와 한치도 다를 바 없이 창당자금과 관련해 짙은 의혹에 휩싸여 있으니 국민으로선 마음 줄 곳이 없어진 것이다.

정말 '3金청산' '세대교체' 가 그들의 정치적 지향이었다면 그들은 정치행태부터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이를테면 상대가 자동차 탈 때 자전거 타고, 호텔에서 기자회견할 때 설렁탕집에서 하는 식의 '법대로' '원칙대로' , 그리고 눈이 둥그레질만큼 '새로운' 그러한 정치행태는 보여줄 수 없었던가.

그저 세불리기만을 위해 장삼이사 (張三李四) 를 측근으로 긁어 모을 것이 아니라 떨어져도 좋다는 각오 아래 측근만 보아도 그가 어떤 인물인가를 단번에 알 수 있게 그렇게 참모진을 구성할 수는 없었던가.

국민은 새로운 정치9단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차라리 축도 볼줄 모르는 바둑 초심자 같은 순수한 정치인을 원했던 것이다.

국민신당의 창당자금 의혹.YS지원설 등 꼬리를 물고 제기되는 비방전과 폭로전에 전체 국민의 불쾌지수만 높아가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이제 선거일도 불과 40일 남짓. 이런 식이라면 21세기의 국가 청사진은커녕 당장 눈앞의 불경기문제도 쟁점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아직도 시간은 있다.

누구라도 먼저 비방전과 폭로전에서 손을 뗄 것을 선언하고 내일을 위한 청사진과 정책을 제시하라. 비방과 폭로를 통해서는 현재의 인기순위를 뒤집기 어려울 것이다.

남은 수단은 오직 정책대결 뿐이다.

DJ라고 해서 느긋해 할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아귀다툼식의 선거판에서는 또 어떤 비방과 폭로전에 휘말려 하루 아침에 날개도 없이 추락할는지 모를 일이다.

그가 진정으로 정치9단이고 국민을 위해 4수에 나섰다면 이쯤에선 폭로와 비방전에서 손을 떼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을 살리는 정치요, 국민을 살리는 대통령이 되는 길이다.

나는 누구건 비방전에서 가장 먼저 손떼는 후보에게 찍을 작정이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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