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정대근 리스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해 말 이후 잠잠했던 ‘정대근 리스트’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광재(44·구속) 민주당 의원이 정대근(65·구속) 전 농협중앙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27일 검찰에 따르면 이 의원은 박연차(64·구속) 태광실업 회장은 물론 정대근 전 회장에게서도 3만 달러의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21일 구속기소된 이강철(62) 전 청와대 정무특보 역시 정 전 회장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

정 전 회장이 불법 정치자금을 준 유력 인사들의 명단이 존재한다는 의혹은 2006년 그가 대검 중수부의 현대차 수사 과정에서 구속됐을 때부터 제기돼 왔다. 정 전 회장이 농협 회장으로 8년간 군림하면서 정치권을 관리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 세종증권 인수(50억원), 휴켐스 매각(20억원) 등 이권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면서 ‘리스트’의 신빙성은 더 높아졌다. 구속된 정 전 회장을 면회한 30여 명의 정치인이 리스트에 등장한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리스트는 없다”고 의혹을 차단했다.

이렇게 꺼져가던 불씨를 이 의원과 이 전 특보가 되살려 놓은 것이다.

특히 최근 검찰 수사에서 정 전 회장의 뇌물 수수액이 100억원을 넘어서면서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정 전 회장이 세종증권으로부터 받았다는 50억원의 실제 주인이 지난 정부의 핵심 실세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정대근 전 회장은 국회의원들에게서 오히려 부탁을 받는 위치였다”며 리스트의 존재 가능성을 낮게 봤다. 노무현 정부의 실세였던 이광재 의원에게도 거의 반말 투로 말할 정도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홍 기획관은 “2007년 6월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250만 달러의 뇌물도 아들의 학비, 고급 시계 구입 등 개인적 용도에 쓴 것으로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대근 리스트’는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두고 두고 정치인들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