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자녀경쟁 끝이 없다…“하찮은 것이라도 지는꼴 봇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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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여섯살박이 승훈이 (경기도과천시중앙동) 는 요즘 일요일 아침이면 아빠와 함께 집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한다.

평일에는 얼굴 보기 힘든 아빠로부터 집중적으로 자전거타기 개인레슨을 받기위해서다.

무슨 시합에라도 나가느냐고? 물론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승훈이나 승훈이 아빠의 표정을 보면 시합을 앞둔 선수만큼이나 결연한 투지 (?)가 감돈다.

옆집에 사는 동갑내기 민규가 두발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뗀 게 벌써 2주일전. 그런데 승훈이가 아직도 보조바퀴를 단 채 자전거를 탄다는데 자존심이 상한 아빠가 특별훈련 조교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내가 조금만 일찍 신경썼어도 우리 아들이 먼저 보조바퀴를 뗄 수 있었는데…" 승훈이 아빠의 '만시지탄' 이다.

별 걸 다 경쟁하는 세상이다.

아이들의 학교성적을, 상받은 갯수를 비교하는데 열을 올려온 한국 부모들. 자녀를 둘러싼 그네들의 경쟁심은 끝도 한도 없어서 사사건건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놓고 키재기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전거 보조바퀴를 누구네 아이가 먼저 떼는가에조차 경쟁 심리가 발동한다.

게다가 자녀들의 평소 실력에 만족할 수 없어 부모들까지 앞다퉈 끼어들다보니 번번이 '아이들 경쟁' 이 아니라 '어른들 경쟁' 이 되고 만다.

초등학교마다 단골 숙제로 등장하는 모형비행기 만들기 역시 부모들, 그중에서도 아빠들의 실력을 겨루는 장이긴 마찬가지다.

똑같은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도 종이를 어떻게 붙여서 말리느냐, 대를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비행기가 날아가는 거리는 천양지차라는 것. 학교에서 누구 비행기가 멀리 날아가는지 시합을 벌이는 날이면 아이들 얼굴뿐아니라 결과를 전해듣는 아빠들 얼굴에도 희비쌍곡선이 그려진다는 얘기다.

그뿐일까. 건강한 몸과 마음을 키워주는 태권도, 진중한 태도와 판단력을 길러주는 바둑을 가르치면서도 부모들의 관심은 "누가 먼저 품띠를 딸까" "어느 아이가 급수를 먼저 올리나" 에 기울어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10개월~1년정도 지나면 1품을 인정하는 검정빨강띠를 딸 수 있거든요. 아이들의 체력이나 이해력에 따라 몇달씩 차이가 날 수 있는데 어머님들중엔 '왜 우리아이만 품띠를 안주느냐' 며 항의하는 분들도 계세요. " 태권도장 사범 신모씨는 전한다.

몇개월마다 급수를 올려주는 바둑교실도 비슷한 실정. 바둑교실에선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 5~6개월쯤 웬만한 기본기술과 용어를 배우고 나면 18급을 준다.

이후 아이에 따라 15급.12급 하는 식으로 급수를 올리는데 자기아이의 진급을 빠르게 해주기위한 부모들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것. "잘하는 아이는 7~8급까지도 올릴 수 있다더라구요. 우리아이라고 초등학생 프로기사 못되라는 법 있습니까. " 저녁밥상을 물리기 무섭게 아들과 대국을 벌인다는 회사원 장모씨 (35.서울양천구목6동) 의 말이다.

주부 김모씨 (33.서울송파구잠실동) 는 심지어 가족모임에서 어느집 아이가 노래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까지 경쟁을 벌인다고 전한다.

" 'DOC와 춤을' 같은 인기곡은 웬만한 애들은 똑같이 따라부르고 춤도 춰요. 자기 애만 못하면 부모들이 얼마나 속상해한다구요. " 노래실력이 좀 처지는 아이라면 백화점 문화센터의 노래교실을 보내거나 아예 팀을 짜서 노래 과외선생을 붙이는 일부 극성파도 있다고. 중앙대 유아교육과 이원영교수는 "스스로 경쟁속에 살아온 30대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까지 지나친 경쟁을 강요하고있다" 면서 "이처럼 남과의 경쟁에만 집착하게되면 평생 자기만족이나 성취감을 느끼지못하고 정서적인 불안에 시달리게된다" 고 말한다.

따라서 굳이 경쟁을 통해 아이들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하고자한다면 "너는 왜 걔보다 못하니?" 식으로 다른 아이와 비교할 것이 아니라 "너 지난번보다 훨씬 잘했구나" 처럼 아이자신과 경쟁을 시키라고 이교수는 조언한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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