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도덕성도 공직 기강도 무너진 외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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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외교통상부의 사무관급 직원이 AP통신으로부터 김선일씨 피랍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의 안이하고 무신경한 자세는 국민의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외국 언론사가 피랍 여부를 문의했는데도 정부가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자국민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국가는 국가로서의 존립 의미조차 없다. 안타깝고 통분스럽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알아보려고 노력했다면 김씨의 피랍 사실을 훨씬 빨리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며, 김씨 석방을 위해 다양한 채널로 석방 교섭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AP통신의 확인 요청을 받은 직원이 취한 태도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상급자에게 보고하지도 않았고, 바그다드 주재 한국 대사관에 통보하거나 연락하지도 않았다.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라크 현지에서 외국인들의 피랍 살해사건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었고, 한국의 추가 파병 결정으로 우리 교민의 신변 위험도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무사안일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 격분하고 있는 김씨의 가족과 국민에게 정부가 무슨 변명을 할지 궁금하다.

그 와중에 외교부는 "AP가 외교부의 누구와 통화했는지 공개하지 않으면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감사원이 어제부터 조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전화받은 사실조차 영영 묻혀버리지 않았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공직기강과 도덕성이 무너진 외교부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AP의 태도도 석연찮다. 외교부에 문의하면서 왜 비디오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지,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피랍 사실이 알려진 뒤 사흘이 지나서야 공개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의문이다. AP 측의 해명이 있어야 할 대목이다.

감사원은 이왕 조사를 시작했으니 사건의 전말을 규명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외교부 조직문화와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정보 수집.관리 시스템 전반의 문제점도 파헤쳐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김씨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