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약속어긴 일본의 어선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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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이 국제적인 관행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자기네 영해라고 선포한 해역에서 우리 어선을 또 붙잡아갔다.

최근 양국간 어업협정 교섭이 교착상태를 벗어나 타협 가능성을 보이던 참이라 모처럼의 원만한 한.일관계 형성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이 때문에 3일로 예정돼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 (EEZ) 획정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한.일간의 어업실무회의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게 됐다.

올해 일본이 일방적으로 직선기선에 의한 '신영해 (新領海)' 를 선포한 이래 거듭되고 있는 이같은 분쟁이 이성적으로 수습되기를 기대해 온 우리로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신영해' 내에서 한국 어선을 나포하는 행위의 부당함은 비단 우리 뿐만 아니라 일본 법원에서도 인정한 일이다.

지난 8월 일본의 한 지방법원은 일본이 직선기선에 의해 확장된 영해 침범을 이유로 한국 어선을 나포한 것은 영해문제의 경우 우선협의를 규정한 한.일 어업협정에 위배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일본 외무성을 비롯, 관계기관은 이 판결에 대해 불복의사를 밝혔지만 이후 한.일 두나라 정부는 전문가회의를 통해 직선기선 문제를 계속 논의하는 한편 중단된 어업협정 교섭의 속개 등 외교적 해결방안을 모색해 왔다.

한.일 어업협정 수정 교섭이 중단된 것은 일본측이 지난 6월과 7월 한국 어선 5척을 잇따라 영해침범 혐의로 나포하면서 외교적 마찰이 빚어졌던 탓이다.

그러던 차에 지난 7월말 두 나라 외무장관이 콸라룸푸르에서 만나 유사한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서로 노력하기로 합의하면서 수습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이같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선을 또 붙잡아간데 대해 우리로서는 일본의 신의 (信義)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영해를 확장하면서 우선 협의를 규정한 한.일 어업협정을 어긴데 대한 우리의 불신과 아울러 이같은 의구심으로 국민들의 대일 (對日) 감정이 격화되는 것을 우리는 바라지 않는다.

그런 일이 없도록 일본은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와 함께 한시빨리 납치한 선원과 선박을 석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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