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자대회,대중문화 주제 대규모 학술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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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내 철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의 대중문화를 놓고 대규모 학술회의를 열어 관심을 끌었다.

주로 유명철학자의 사상이나 개념을 조명하던 종래의 철학 연구풍토에서 변화하는 현실을 따라잡으려는 모처럼의 시도로 보여 특히 이목을 끌었다.

한국철학회 (회장 이영호).철학연구회 (회장 엄정식) 등 전국적인 철학연구단체가 연합해 1년에 한번 개최하는 제10회 한국철학자대회 (대회장 하재창)가 '대중매체문화의 허위와 진실' 이라는 주제로 지난 24~25일 원광대에서 열렸다.

이날 대중문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대중문화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논자는 이종관 교수 (성균관대) .컴퓨터가 창출한 가상현실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내적 구조를 통해 비판했다.

가상공간의 시뮬레이션에 의해 '탄생과 죽음의 구별' '시간의 비가역성 (非可逆性)' 등 전통적 형이상학이 사라지는 대신 '차별을 통한 정체성 확인' 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고 불확정성을 무한히 확산함으로써 소비를 확대재생산하는 자본주의의 깊은 작동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 반면 최재식 교수 (강릉대) 는 대중문화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린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영화가 객관주의와 이성주의라는 전통적인 이원적 철학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빛과 그림자로 구성된 영화텍스트는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와 이해없이는 의미구조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바로 이런 점에서 영화가 종전의 철학적 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논점은 대중문화가 어떻게 인간적 삶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점. 이와 관련 예술의 본질 또한 '인간 해방' 에 있다며 예술의 자율성 확보를 통한 대중문화의 인간화 가능성을 모색한 강대석 교수 (효성가톨릭대) 의 발표가 많은 호응을 받았다.

자본주의 문화생산 및 유통구조에 포섭된 오늘날의 대중문화에 대해 강교수가 찾은 비판적 대안은 순수예술이었다.

참여예술이 그 대안일 것으로 보는 통상의 시각과 달랐다.

강교수는 순수예술이 근대 이후 종교적.자본주의적 구속으로부터 인간과 사회를 자유롭게 하는 문화적 수단이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순수예술이 신비주의나 순응주의로 도피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며 순수예술이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회인식과 건전한 역사인식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는 주제의 집중도가 관련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정도로 진척된 논의에 미치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좀더 분발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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