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이회창총재측-反이회창총재측 사이에 끼여 괴로운 이한동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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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괴롭다. 답답하다. 이래가지곤 양쪽 다 죽고 당도 망한다. " 이한동 (李漢東) 신한국당 대표가 털어놓은 요즘 심경이다.

그는 친 (親) 이회창총재 진영과 반 (反) 이회창파 사이에 끼어있다.

양쪽에선 서로 자기편에 붙으라고 강요한다.

그는 그러나 "비무장지대가 있어야 한다.

모두들 조금씩만 자제하자" 며 화해와 단결을 외치고 다닌다.

그렇지만 도리어 욕만 얻어 먹는다.

이쪽 저쪽으로부터 '기회주의자' 라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

극한 대치중인 양편은 중립지대에 남으려는 李대표를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지난 24일의 李총재 지지대회만 해도 그렇다.

李대표는 당초 李총재에게 대회강행을 만류했다.

"어렵더라도 단합을 위한 노력을 해야지 줄세우기로 적전 (敵前) 분열을 부추겨선 안된다" 고 설득했다.

하지만 金대통령을 계속 밀어붙이려고 작심한 李총재는 강경했다.

당의 공식 행사임을 강조하면서 李대표가 참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李대표는 할 수 없이 참석했다.

인사말을 통해 "후보교체는 불가능하다" 는 말도 했다.

그러나 "오늘 대회는 특정인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의 단합을 위한 것" 이라고 선언해 버렸다.

李총재 지지대회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李총재측은 이게 불만이었다.

"밀려면 화끈하게 밀어야지, 왜 그리 어정쩡하냐" 는 비판이 쏟아졌다.

비주류에선 "뚝심이 없다" 고 눈총을 보냈다.

이에 대한 李대표 설명은 이렇다.

"당시 상황에서 내가 대회에 안나갔으면 당은 완전히 갈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대회에서 할 얘기는 했다.

내가 李총재를 지지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보아선 안된다.

당에는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 " 李대표는 심각한 국면으로 들어선 당 내분 사태를 어떻게든 봉합하려 한다.

李총재측이 27일 강행할 예정인 서울지역 필승결의대회는 연기했으면 하는 심정이다.

李총재에게 폭로전을 전개한 박범진의원을 당기위원회에 회부해 출당 (黜黨) 한다는 李총재측 방침에 대해서도 마땅하게 여기지 않는다.

두가지 모두 비주류를 자극해 집안싸움만 격화시킬 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李대표는 비주류에 대해서도 "막 나가선 안된다" 고 신신당부한다.

김덕룡.박찬종 선거대책위원장에겐 전화를 걸어 "대화로 풀어나가게 당무에 참여해 달라" 고 통사정했다.

서석재.서청원의원등도 만날 계획이다.

그러나 상황은 돌이킬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李대표에겐 괴로운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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