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대역사]6.일본 사할린 가스파이프라인 공사…'에너지동맥'시추(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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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방의 차가운 공기와 살을 맞댄 사할린 앞바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찾아 촉수를 내민 '사할린 1' '사할린 2' 탐사선이 마치 용처럼 불을 내뿜고 있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일본에서 사할린 앞바다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를 개발해 국내에 공급하려는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열도에서 멈추지 않고 한반도~일본~중국~러시아를 잇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구상과도 연결돼 있어 국제정치적 측면에서도 주목을 끈다.

새로운 세기에 동아시아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될 대역사임이 분명하다.

'사할린 1' 은 일본의 14개 민간회사.단체가 출자해 만든 사할린석유가스개발 (SODECO) 을 중심으로 미.일.러시아 3개국의 4개 회사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사할린 2' 는 미쓰이 (三井) 물산.미쓰비시 (三菱) 상사등 미.일.유럽의 5개 회사가 자본과 기술을 투입했다.

두 프로젝트는 모두 지난 95년 5월 러시아측과 정식 합의해 추진되고 있는데 '사할린 1' 은 벌써 시굴 (試掘)에 들어가 경제성을 인정받았다.

민간회사.단체 중심 99년께 첫생산 예정 실제 생산은 매장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할린 2' 가 오는 99년에 먼저 시작될 예정이며 '사할린 1' 은 2004년께가 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홋카이도 (北海道) 의 다쿠긴 (拓銀) 종합연구소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사할린 앞바다에 매장된 채굴 가능한 천연자원은 원유 약 60억 배럴, 천연가스 약 1조8천억 입방, 천연가솔린 약 1억4천만t. '사할린 1, 2' 프로젝트가 완료돼 안정적인 공급을 시작하게 되면 일본은 현재 연간 원유 소비량의 약 7%,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30%를 이곳에서 충당할 수 있다.

에너지의 중동 의존도가 큰 일본으로서는 복음 (福音) 이나 마찬가지다.

이 엄청난 '보물' 을 캐는데 드는 비용은 총 2백50억달러 (약 23조원) 로 추정된다.

미.일.러.유럽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된 사할린 석유.천연가스 개발사업은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에너지 공급에도 적잖은 기여를 할 것같다.

프로젝트 자체가 민간차원의 이익사업으로 수출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 동아시아권역에 새로운 자원 공급처가 생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할린의 대륙붕 개발이 진행되면서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일본 국내로 가져오려는 구상이 요즘 부쩍 관심을 끌고 있다.

사할린에서 홋카이도~도호쿠 (東北)~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이 파이프라인 구상은 석유자원개발.신일본제철.NKK.스미토모 (住友) 금속공업.가와사키 (川崎) 제철등이 지난해 가을부터 현실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고 있는 중이다.

현재 일본에 수입되는 천연가스는 모두 산출국에서 액화시킨 액화천연가스 (LNG) 형태로 운반돼 도착후 이를 다시 기화시킨다.

日 천연가스소비량 年間 30% 충당가능 그러나 파이프라인을 통하면 천연가스를 액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운반할 수 있어 물류비용이 그만큼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

석유자원개발이 이 구상에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단순히 물류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 뿐만이 아니라 가스판매사업에도 활용이 쉽기 때문이다.

도쿄가스.신일본제철등 44개사가 출자해 만든 민간 에너지연구단체 '광역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연구회' 는 일본열도를 관통하는 2개의 라인을 조기에 건설할 것을 강력히 주장해 일본 정부에서도 면밀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하나는 사할린~삿포로 (札幌)~니가타 (新潟)~기타큐슈 (北九州) 를 거쳐 한국까지 이어지는 '수입용 라인 (약 2천4백㎞)' 이며, 또 하나는 센다이 (仙臺)~도쿄 (東京)~오사카 (大阪)~히로시마 (廣島) 등을 통하는 '수요개척용 라인 (약 2천5백㎞) ' 이다.

이 두 라인을 수개의 횡단라인으로 연결해 국토 전체에 천연가스 대동맥을 잇자는게 이 연구회의 주장이다.

건설비용은 '수입용 라인' 이 1조3천억엔 (약 9조1천억원) , '수요개척용 라인' 이 약 2조2천억엔 (약 15조4천억원) 으로 총 3조5천억엔 (약 24조5천억원) 정도 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파이프라인을 깔면 막대한 초기 건설비를 감안하더라도 4천㎞까지는 LNG 운송보다 경제성이 낫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내의 운송에 적합하다.

물류비용 대폭 절감 자원 수출까지 고려 물류비용 절감에 따른 천연가스의 가격인하를 기대할 수 있고 에너지 공급지역의 다원화로 안정적인 자원공급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이프라인 구상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천연가스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이 사할린과 가스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면 중동등 다른 지역에서 수입할 때 가격협상력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회는 국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북동아시아 간선파이프라인에 연결시키는 장기적 구상도 내놓았다.

중국이나 러시아 내륙지방.사할린 등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한국.북한.일본등 동아시아 전역에 공급하려는 이 구상이 실현되면 동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에너지 동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대사건' 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할린의 대륙붕 개발이 전후 냉전체제 종식이란 역사의 흐름을 타고 실현된 점을 생각하면 사회체제가 다르고 대립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이 대역사가 현실화되기 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나 많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모든 나라가 이익을 본다는 공통인수가 있다지만 세계의 잠재적인 분쟁지역에 속하는 동아시아에서 안보와 직결되는 에너지 동맥을 나눠 갖는다는 것은 아직은 낭만적인 일로 인식되는 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할린 앞바다에서 품어나오는 천연가스가 얼어붙었던 동아시아를 녹이는 기폭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도쿄 = 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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