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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4> 축구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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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퍼기! 퍼기! 손을 흔들어줘요.”(Fergie, Fergie give us a wave)

승리를 눈앞에 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팬들은 이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합니다. 살아 있는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에 대한 존경심과 승리에 대한 환희를 담은 흥겨운 노래입니다. 맨유 홈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거대한 성당에 울려 퍼지는 성가를 듣는 기분입니다. 사실 맨체스터에서는 종교보다도 센 축구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원창 기자입니다. 지난 3년간 일곱 차례 영국을 찾아 현장을 누비면서 세계 최고의 클럽 맨유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이곳에서 박지성이 뛰고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찼습니다. 맨유가 최고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소개합니다.

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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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는 1878년 ‘뉴턴 히스 랭커셔 & 요크셔 레일웨이 FC’라는 긴 이름으로 창단합니다만 곧 재정 악화로 도산 위기에 빠집니다. 양조 사업가 존 헨리 데이비스의 도움으로 1902년 팀 명칭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바꾸며 새 출발합니다. 하지만 초창기 맨유는 보잘것없는 하위 팀이었습니다. 맨유가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두 명의 명장, 매튜 버즈비와 알렉스 퍼거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버즈비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잿더미가 된 올드 트래퍼드 위에 새로운 팀을 건설합니다. ‘버즈비의 아이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젊은 선수들을 키워 다섯 차례 리그 우승을 내달립니다. 하지만 비행기 추락사고로 주전 선수 8명이 사망하는 뮌헨 참사의 시련을 맞습니다. 버즈비 감독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중상을 입었음에도 팀을 재건합니다. 1968년 잉글랜드 팀 최초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두며 맨유는 세계화의 첫발을 내딛습니다.

버즈비의 은퇴 후 맨유는 길고 긴 암흑기에 빠집니다. ‘술주정뱅이 팀’이라는 오명에 휩싸이던 86년 11월 퍼거슨 감독이 부임한 후 과감하게 개혁을 실시합니다. 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과 함께 맨유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리버풀·아스널·첼시 등 라이벌들의 도전이 거셌지만 퍼거슨이 이끄는 맨유는 무적 함대처럼 우승 가도를 내달립니다.

‘최고의 선수들’ 베스트에서 호날두까지

맨유의 전설이 되려면 아주 특별해야 한다고 합니다. 수많은 스타의 체취가 남아 있다 보니 웬만큼 잘해서는 전설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덩컨 에드워즈, 빌 포크스, 데니스 바이올렛 등 ‘버즈비의 아이들 1세대’에 이어 ‘황금 트리오’로 불리던 보비 찰턴-조지 베스트-데니스 로가 60년대 말 맨유의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끕니다. 외로운 7번 브라이언 롭슨에 이어 퍼거슨 감독 부임 후 에릭 칸토나-로이 킨-피터 슈마이헬 등이 우승 엔진을 가열합니다. 이후 데이비드 베컴-라이언 긱스-폴 스콜스-게리 네빌 등 ‘퍼거슨의 아이들’이 우승 행진의 뒤를 잇습니다. 지금은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바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자산가치 2조5000억원…영국을 넘어 세계로

맨유는 ‘영국을 넘어 세계로’라는 기치 아래 가장 먼저 글로벌 마케팅에 나선 구단입니다. 맨유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통해 전 세계를 겨냥합니다. 우승 횟수에서는 리버풀에 뒤진 맨유가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까닭입니다. 맨유는 1월 21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구단’ 1위에 올랐더군요. 포브스에 따르면 맨유의 자산이 18억 달러(약 2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전 세계 스포츠 구단을 통틀어 1위를 달리는 까닭은 세계에 퍼져 있는 7500만 명의 충성도 높은 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의 맨유 5년

2005년 7월 맨유에 입단한 박지성은 지난해 12월 13일 토트넘 홋스퍼와의 원정경기에서 통산 100경기 출장을 기록합니다. 한국 선수가 유럽 한 팀에서 100경기 이상을 뛰기는 차범근(수원 삼성 감독) 이후 두 번째입니다. 끊임없는 질주로 빈 공간을 만들고, 보이지 않는 헌신으로 팀플레이를 펼치는 그는 퍼거슨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의 마지막 지도자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입니다.



맨유 따라잡기 키워드

1 알렉스 퍼거슨 ‘열정의 축구노동자’라 불리는 그는 1986년 11월 맨유에 부임한 후 23년간 크고 작은 31개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맨유를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클럽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으로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선정한 현역 최고의 감독이기도 하다. 냉혹함과 따뜻한 배려를 적절히 구사하며 개성 강한 선수들을 휘어잡는다.

2 올드 트래퍼드 1910년부터 맨유의 홈 구장으로 사용되는 유서 깊은 축구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은 후 다섯 차례 증·개축 끝에 7만6212명을 수용하는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보비 찰턴 경은 ‘꿈의 극장’(Theatre of Dreams)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북쪽 관중석은 맨유 서포터들의 전용석으로 스트레트퍼드 엔드라 불린다.

3 뮌헨 참사 1958년 2월 6일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챔피언스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행을 확정 지은 후 귀국하던 도중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중간 경유지인 뮌헨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주전 선수 8명을 포함해 15명이 사망했다. 맨유는 매년 뮌헨 참사를 추모하는 행사를 마련한다.

4 트레블 자국 리그와 FA(축구협회)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 3개 대회를 한 시즌에 모두 우승하는 것을 말한다. 유럽 리그를 통틀어 셀틱(스코틀랜드), 아약스와 PSV 에인트호번(이상 네덜란드), 맨유 등 단 4개 팀만이 이룬 대기록이다. 맨유는 1998~99시즌 빅 리그 팀으로는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한다.

5 버즈비의 아이들(Busby's Babies)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맨유를 명문 구단에 올려놓은 매튜 윌리엄 버즈비 경이 길러낸 선수들을 말한다. 덩컨 에드워즈 등 1세대를 뮌헨 참사로 잃은 버즈비 감독은 생존한 보비 찰턴과 조지 베스트, 데니스 로 등 2세대를 앞세워 잉글랜드를 비롯해 유럽을 제패했다. 올드 트래퍼드 정문 앞에는 버즈비의 동상이 서 있다.

6 에릭 칸토나 1992년부터 97년까지 맨유에서 뛰며 네 차례 리그 우승과 두 차례 FA컵 우승을 이룬 프랑스 출신의 전설. 자신을 욕한 관중에게 쿵후 킥을 날리는 등 악동으로 소문났던 그는 퍼거슨 감독이 이끈 맨유 전성기의 출발을 알렸다. 화려한 테크닉과 넓은 시야, 절묘한 패스 능력에다 해결사 몫까지 해낸 그의 축구는 아름다웠다.

7 데이비드 베컴 잉글랜드 최고의 축구 스타 베컴은 1994년부터 2003년까지 맨유에서 뛰며 394경기에서 85골을 뽑아냈다. 긱스, 네빌, 스콜스 등과 함께 퍼거슨의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아버지 같던 퍼거슨 감독과의 불화로 팀을 떠나야 했다. 베컴의 이적은 ‘누구라도 팀에 해가 된다면 내보낸다’는 퍼거슨의 냉정함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8 붉은 악마(Red Devils) 대∼한민국 대표팀 응원단을 일컬어 ‘붉은 악마’로 부르지만 원조는 맨유다. 맨유의 유니폼 색깔을 따서 붉은 악마라 불리는 맨유 팬들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아시아·아프리카·미주 등에 7500만 명이 넘게 포진해 있다. 맨유가 글로벌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9 천상의 라이벌 리버풀 맨유는 라이벌 리버풀과 성장을 함께해 왔다.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리버풀이 잉글랜드를 대표했지만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92년 이후 맨유가 리버풀의 업적을 뒤쫓고 있다. 리버풀이 주춤한 사이 맨유는 아스널·첼시 등과 새로운 라이벌 관계를 맺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10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호날두는 조지 베스트-브라이언 롭슨-베컴으로 이어진 맨유 7번의 계승자다. 지난 시즌 42골을 몰아친 그는 1968년 조지 베스트 이후 40년 만에 발롱도르(프랑스 풋볼 선정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고, 맨유 소속으로는 최초로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쥐며 전성기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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