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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소설가 한창훈이 씁니다 ① 벽문어(碧紋魚)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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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는 이른바 ‘국민 생선’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고등어 반찬은 꼭 있다.

길이 두 자 정도로 몸이 둥글고 비늘이 매우 잘다. 등이 푸르고 무늬가 있다. 맛은 달콤하며 탁하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만들기는 하지만 회나 어포는 만들지 못한다. (중략) 낮에는 유영 속도가 빨라 잡기 어렵다. 성질이 밝은 곳을 좋아해 밤에 불을 밝혀 잡는다.

벽문어는 고등어다. 이십여 년 전, 나는 충북 이원면 장찬리에 있는 후배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남한을 따로 떼어내 이원면에 줄을 묶어 올리면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내륙 깊숙한 곳이다. 바다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소리. 그래서 그곳 아이들은 비행기는 알아도 배를 잘 몰랐다.

완행기차에서 내려 산을 타고 오르고, 그리고 수몰지구 저수지를 한참이나 돌아 들어가자 마을이 나타났다. 후배는 마을이 생긴 이래 최초로 4년제 대학생이 된 이였다. 합격 통지서 받은 날 돼지 잡아 잔치를 했단다. 이름도 이원봉이다. 이원에서 봉 난 것이다. 마을 이장이 그의 목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집에 도착하자, 왼벵이 대학교 친구가 왔다던디, 하면서 동네 어른들이 구경을 오셨다. 나는 착실히 얼굴을 보여드렸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와 누님은 한참 동안 부엌에서 달그락 톡톡톡 거렸다. 깊은 산골 밥상은 어떨지 기대되었다. 버섯막과 인삼막이 곳곳이었고 산나물 말린 것도 돌담마다 그득했던 것이다. 뱀이나 오소리 따위는 예사로 끓여먹는다고도 들었다.

이윽고 밥상이 들어왔다. 뜻밖에도 미역국에 김·멸치·파래무침 같은 반찬이 가득했고 정 중앙 뚝배기에는 고등어조림이 들어 있었다. 구하기 힘든 게 귀한 법. 어머니께서 얼마나 아끼던 것들일까 싶어 나는 몹시도 미안해졌다.

이 바다 것이 바다에서 항구로, 항구에서 내륙 도시로, 그리고 이 깊은 산속으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람 손을 거쳤을까. 하지만 그 덕에 동태·멸치 따위와 더불어 고등어의 미덕은 방방곡곡 어디나 있다는 것이다. 소태처럼 쓴맛이 돌 정도로 간을 해 놓아도 훌륭한 반찬이 되는 탓에 사실 만만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고등어에 대해서는 모두 다 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안동 사는 안상학 시인은 간고등어가 안동댐에서 난다고 한다. 임하댐에서는 아예 간을 한 채 양식도 한단다. 그럴 리가…. 아무튼 김삼식, 이삼순씨가 마을마다 꼭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륙 사람이 섬에 들어와서 가장 놀라는 것이 고등어 맛이다.

우선 회. 예전에는 ‘고등어를 어떻게 회로 먹어요?’라고 주로 반응했다. 고등어는 살아서도 썩는다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요즘은 제주도 직송 고등어회가 왕왕 텔레비전에 나온다. 이 때문에 ‘아직 한번도 못 먹어 봤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들어 보니, 역시나 비싸다. 하긴 그럴 것이다. 비행기 타고 간 게 쌀 리가 있는가. 한번도 못 먹어 봤다는 말은 한번도 못 가 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 못 사 먹는다면 방법은 하나. 잡아먹으면 된다.

의외로 고등어 회는 갈치 회나 도미 회보다 먹기 쉽다. 낚시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주 잡아 봤을 것이다. 사실, 돔을 노리고 간 낚시꾼에게는 고등어가 아주 귀찮은 존재다. 번개같이 달려들기 때문에 다른 것이 물 틈이 없다. 그만큼 낚기 쉽다는 뜻이다. 낚시 초보자라도 쉽게 낚을 수 있다. 고등어는 전갱이와 함께 열년사시 방파제나 갯바위에 수시로 드나든다.

경험이 없다면 낚시 잘하는 친구를 따라가면 된다. 그런 친구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최근에 싸웠다면, 까짓것 방법은 또 있다. 인터넷이나 낚시 채널 같은 데서 고등어가 문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 동네 낚시점으로 가시라. 초보라 말하면 채비에 대하여 설명해 주거나 아예 만들어 주기도 할 것이다. 낚싯대도 흔한 민장대면 충분하다. 민장대는 릴이 필요 없는, 말 그대로 밋밋한 낚싯대다. 생선은 낚싯대 보고 물지 않으니 비싼 것 살 필요 없다. 낚싯대와 줄, 자그마한 찌와 봉돌, 바늘이 준비될 것이다. 그러면, 낚고 있는 사람 근처에 서서 따라 하면 된다. 몇 번 하면 익숙해진다.


고등어는 금방 죽는다. 그러니 얼음이나 얼린 PET병 넣은 아이스박스 같은 곳에(보통 ‘쿨러’라고 한다) 차게 보관해야 한다. 살이 부드러워 회 뜨기가 쉬우면서도 어렵다. 비늘을 긁어내고(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이지만 긁어내는 게 좋다) 내장을 따고 등뼈의 피를 긁어내고는 깨끗하게 씻는다.

간단하게 회 뜨는 방법은 이렇다. 물기를 닦아내고 척추를 따라 한쪽 면씩 떼어낸다. 그것을 반대로 놓고 갈비뼈 쪽을 발라내고는 살점을 잘라낸다. 껍질이 남도록. 보통의 회처럼 껍질을 떼어내다 보면 살점이 다 망가진다. 이렇게 말로 설명하려면 한정 없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따라 해 보는 게 가장 좋다.

이런 것 잘하는 친구와 싸웠다면 잠시 화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바닷가 가서 낚고 썰고 한잔 하다 보면 화해는 금방 된다. 또 싸울지 모르니 빨리 배워둔다. 낚시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보기 좋은 것은 가족이 와서 아빠가 회 떠 먹이는 모습이다. 모름지기 아비란 먹을 것을 물어오는 존재다.

고등어 회는 당연히, 아주 싱싱해야 한다. 살을 눌러보아 조금이라도 물렁거린다 싶으면 횟감이 아니다. 초고추장이나 겨자냉이에 식초를 조금 쳐 먹으면 좋다. 그런데 이 짓, 할 줄 알게 되면 두고두고 도맡아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 점은 고려하시길.

구이나 찜으로도 좋다. 방파제에서 낚은 고등어는 작은 것이 보통이다. 작은 것은 구우면 맛이 떨어진다. 그래도 내 손으로 잡은 게 어디인가. 손질하여 소금 간을 해 두면(냉동해 놓으면 된다) 필요할 때 구워먹을 수 있다. 찜은 묵은지와 함께 지지면 좋다. 찜 요리법은 인터넷에 잔뜩 나와 있다.

그나저나 원봉이는 이장이 되었을라나. 이장이 되었다면, 그리고 멀리서 손님이 찾아온다면, 버섯찌개나 오소리탕은 뒷날로 미루고 우선 고등어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엄마와 누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자산어보(玆山魚譜)』. 누구나 아는 책이지만 아무나 읽지는 못한 책이다. 학교에서 배운 『자산어보』에 관한 얄팍한 지식은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1760∼1816)이 흑산도 유배 생활 중 집필한 바다 동식물에 관한 기록으로, 한국 최고(最古)의 어류학서. 사실, 이게 전부다.

그러나 『자산어보』는 그 이상의 텍스트다. 우선 그 기록이 워낙 꼼꼼하고 치밀하다. 수상 동식물 155종의 이름부터 생김새와 습성, 나아가 맛과 약효까지 상세히 적어놓았다. 그 자세함과 정확함은 요즘 출간되는 어류도감에 못지않다는 게 학계의 평이다. 무엇보다 『자산어보』 시절의 바다와 오늘의 바다는 그리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갯것이 오늘 저녁 우리 밥상에 오르는 바로 그 갯것이란 얘기다. 『자산어보』가 교과서 안에서만 존재하는 문화재가 아닌 까닭이다.

소설가 한창훈(47)씨가 칼럼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를 쓰겠다고 작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전남 여수 앞바다 거문도에서 태어나 여태 그 섬에서 살고 있다. 그가 쓰는 소설의 태반도 물론 바다에 관한 이야기다.

“바다를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자산어보』를 읽고서 아예 좌절을 했지 뭔가. 이 애물단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몇 년을 고민하다 결국 에세이 여는 글로 삼기로 했네. 이른바 ‘한창훈식 『자산어보』 해제’라 할 수 있지.”

여태 『자산어보』에 관한 접근은 학술적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한씨는 『자산어보』의 현대적 의의를 주목한다. 정약전의 바다가 한창훈의 바다여서다. 그러나 한씨가 가장 높이 사는 『자산어보』의 가치는, 책에서 감지되는 사람 냄새다.

“실학자라 해도 양반이었단 말이지. 평생 생선은 밥상 위에서나 구경했을 법한 양반이, 아무리 유배 중이었다 해도 비린내 풍기는 생선을 요리 뜯어보고 조리 헤집어 보며 연구하고 기록을 남겼다는 게 중요한 거요. 그때만 해도 갯일은 천한 일이 아니었던가.”

역사에 따르면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16년이나 생활한다. 섬 주민들과 허울없이 지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그 세월을 거치며 그 역시 섬사람이 됐던 것이다. 사실 소설가 한씨도 책상 앞에 앉아 있지 않을 땐 어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씨는 최소 서른 편의 글감을 마련해 두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155종을 죄다 다룰 수도 있지만 내가 모 신문 전속작가가 아닌 관계로 그 문제는 차차 생각해 볼 참”이라고 의뭉을 떨었다. 해학과 능청의 소설가다운 출사표다.

필자 약력=1962년 전남 여수시 거문도 출생 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98년 장편 『홍합』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 장편 『홍합』『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소설집 『가던 새 본다』 『청춘가를 불러요』 등.

글=손민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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