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연예산업도 선진화 · 전문화로 ‘판’을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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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고인이 된 탤런트 장자연씨를 둘러싸고 온갖 루머가 난무하고 있다. 생전에 작성했다는 문건에 실려 있는 ‘술자리 접대, 성 상납’ 관련자라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사들이 포함된 명단까지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형편이다. 그러나 대중의 호기심에 천박한 관음증이 더해진 밑도 끝도 없는 소문에만 휘둘릴 때가 아니다. 사태의 근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장자연씨에 대한 폭행·협박설은 경찰이 철저히 수사해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

우리는 파문이 이처럼 확대된 것은 연예계가 제대로 된 룰조차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여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룰이 없는 상태에서 연예인·연예기획사·외주제작사·방송사 등 이해당사자들이 제가끔 이익을 극대화하느라 급급했고, 그 와중에 폭행이나 성 상납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불거졌던 것이다.

이른바 ‘노예계약’ 시비만 해도 그렇다. 연예인, 특히 신인급의 경우 길게는 10년 넘는 계약기간 때문에 경제활동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받아 왔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10~20명을 수년간 연습시켜도 한두 명 정도가 스타로 발돋움할까 말까 하는 마당에 투자비용을 건지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그래도 상식선이 있는 법이다. 법원도 최근 아이돌 그룹 씽(Xing), 가수 메이, 광고모델 유민호씨 등이 제기한 계약무효 소송에서 잇따라 연예인 손을 들어주지 않았는가. 공정거래위가 연예인 전속계약서 표준약관을 오는 6월까지 제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뒤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연예산업도 이젠 ‘판’을 바꿔야 한다. 방향은 산업 전반의 전문화·선진화다. 지금처럼 다수 기획사가 스타 양성·계약 대행, 프로그램 제작에 연예인 사생활 관리까지 손대는 구조에서는 갈등과 추문이 끊이지 않을 게 뻔하다. 전지현씨 휴대전화 복제 파문이 왜 빚어졌겠는가. 차제에 미국 뉴욕·캘리포니아 주처럼 계약 등 법률 문제만 담당하는 에이전시와 연예활동을 맡는 매니저로 전문화·이원화하는 제도를 적극 검토할 만하다. 미국식 ‘공인 에이전시’ 제도를 담은 ‘공인 연예인 관리자의 업무 등에 관한 법률’이 17대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있지만 어느 결에 흐지부지됐다. 자금 흐름의 투명성도 연예계 선진화에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연예인은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직업 조사에서 언제나 상위권이다. 지난달 한 기획사의 연습생 공개채용은 무려 7000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자라나는 세대와 대중문화 산업의 도약, 한류(韓流)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연예계는 공정한 룰과 선진 시스템을 하루빨리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