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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빌딩 숲 미국에 서울의 멋 한옥이 자랑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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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제 별명이 ‘동네 건축가’ ‘골목대장’입니다. 살림집을 겸한 작업 스튜디오가 서울 경복궁 옆 골목 안에 있는 데다 그동안 설계하고 작업한 건물이 주로 서울 사대문 안에 집중돼 있거든요. 한옥을 짓는 것도, 좁은 골목길 안 빽빽히 들어선 낡은 건물들 사이에 새 작품을 세우는 재미도 남다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서울에 대해 우리의 (건축)언어로 이야기 하는 것, 그게 제가 할 일이죠.”

한국적 콘텐트를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해온 건축가 황두진(46·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사진)씨가 4월 한국 건축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5대 도시를 돌며 강연회를 연다. 하버드대·스미스소니언 아시아미술관·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UCLA 건축학대학원·워싱턴주립대에서 황씨의 작품에 주목하고 초청했기 때문이다. 강연 주제는 ‘한국 현대 건축의 새로운 경향’과 ‘서울: 새로운 정체성의 추구’다.

◆‘서울의 경험’을 담는 건축=황두진씨는 미국 강연을 위해 3분30초 안팎의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물을 만들었다. 이 짧은 필름이 보여줄 대표적 작품 중에는 서울 가회동 한옥들(‘집운현’과 ‘동인재’ 등)과 북촌의 레스토랑(‘가회헌’), 낙원동 한의원(‘춘원당’)이 포함돼 있다. 그가 지난 10년간 ‘서울의 정체성 찾기’라는 화두를 던지고 고민해 온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들이다. 이를테면 집운현과 동인재는 한옥의 멋을 살리면서도 지하 공간에 주차장이나 첨단 영상기기를 갖춘 AV룸을 갖췄다. 2006년에 작업한 가회헌은 단순하고 모던한 양옥과 수공예적인 섬세함이 드러나는 한옥이 서로 마당을 통해 ‘대화’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반면 낙원동 좁은 골목가에 위치한 한의원 겸 한방박물관인 춘원당은 7대째 이어져 온 전통과 역사를 가장 현대적인 이미지로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서울 낙원동에 자리한 한의원 ‘춘원당’(2008년). 투명창을 통해 화려하게 보이는 2층이 약을 달이는 곳이다. 140년 된 한의원 역사는 문화홀과 한방박물관을 갖춘 ‘21세기형’ 한방 공간으로 재창조됐다. 황씨는 “이 건물을 통해 골목 안에서 주변의 건물들을 누르지 않으면서도 도시 풍경에 새로움을 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B 작품. [황두진건축 제공]

◆로컬리즘과 글로벌리즘=‘서울 이야기’를 담는 건축을 고민해 왔다는 그에게 무엇이 ‘서울적인 것’이냐고 물어봤다. 황씨는 망설이지 않고 서울을 대표하는 풍경은 ‘고층 빌딩’이 아니라고 답했다. “서울은 3, 4 층가량의 낮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경사진 언덕도 많고, 좁은 골목길이 많은 게 더 큰 특징”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또 “강렬한 재료나 형태보다는 소박한 소재를 통해 역사·자연 등 주변 경관과 어울려 공간적으로 풍부해질 가능성이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곳에서 ‘서울 아니면 지을 수 없는 건물’을 글로벌 기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 북촌의 ‘가회헌’(2006년).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아담한 한옥과 양옥은 마당을 통해 연결돼 있다. 양식이 다른 두 건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차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작가 박영채 작품.]

◆몸 가꾸기에 발성연습까지=황씨는 멋진 강연을 위해 몸부터 바꿨다. 18㎏을 감량하고 헬스로 근육을 다듬었다. 장시간의 발표와 질의·응답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아나운서 유정아씨로부터 발성과 프레젠테이션 과외도 받았다. 조만간 영어로 리허설도 할 계획이다. 그는 “한 달간 스튜디오를 비워야 하는 스케줄이 부담스럽다”면서도 “이렇게 해서라도 한국을 잘 몰랐던 바깥 세상에 ‘현재진행형’의 한국 건축을 알리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황두진=1963년 서울생. 서울대 건축과 학·석사, 미국 예일대 석사. 2000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창립. 역사도시이면서 역동적인 복합도시인 서울에서 작업하는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주요 작품으로 해냄출판사 사옥(서교동), 시네마서비스 사옥(전 열린책들 사옥·통의동), 북촌 한옥 다섯 곳 등. 서울시 ‘한강 르네상스 계획’의 하나로 추진된 한강 교량 보행자 시설 건축도 맡았다. 저서로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2005), 『한옥이 돌아왔다』(200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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