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이인제 신드롬의 기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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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인제 (李仁濟) 전경기지사는 경기의 규칙을 파괴했다. 그는 규칙에 따라 준결승 경기에 참가해 패배했다.

그래 놓고도 李전지사는 그 경기는 무효라고 선언, 다시 결선에 나서고 있다. 그가 이런 역리 (逆理) 의 결정을 하자 세론은 호되게 그를 질책하고 비판했다.

언론은 근 1주간이나 그를 난도질했다. 정상적으로 말하면 그는 자신에게 날아온 정곡 (正鵠) 의 화살에 맞아 쓰러져야 했던게 순리다.

그러나 그는 살아났다. 이렇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정 (正) 과 부정 (不正) 은 어디로 갔느냐고. 도의적 차원의 이런 개탄이 한동안 회자 (膾炙) 된 후 마침내 과연 그가 살아나는 배경이 무엇이냐는 데로 의문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인제씨는 아직 둥지를 틀 정당도 만들지 못했다. 또 그를 받쳐줄 주변 인재도 저명도의 기준이나 권위의 측면에서 볼 때 변변한 면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국민 지지율에서 40여년의 화려한 정치역정에다 호남이란 난공불락의 지역기반을 가진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 후보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법조계 30여년의 올곧은 외길과 그로 인한 감사원장·국무총리의 경력을 거치면서 '대쪽' 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 집권 신한국당 대선후보를 쟁취한 이회창 (李會昌) 총재를 그는 저만큼 따돌리고 있다.

세론의 거센 역풍에도 그가 지속적으로 2위를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 역시 이 기묘한 '이인제 신드롬' 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유추해볼 따름이다.

3金씨류 (類) 의 정치에 신물을 느낀 일부 국민의 반감이 젊은 그에게 반사적 이득을 주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3金정치는 본인들은 억울하겠지만 독선과 아집, 배반과 식언, 권력욕으로 점철된 것으로 국민에게 비쳐지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두가지 반론이 금방 따른다. 우선 이인제씨도 경선 승복을 뒤엎어 3金씨와 뭐가 다를 것이냐는 것과, 이회창씨는 3金 청산을 들고 나왔는데도 왜 가라앉느냐는 지적이다.

전자에 관해선 이인제씨와는 전혀 면식이 없는 몇몇 30대의 의견을 소개하려 한다. "신한국당 경선은 민의를 왜곡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이들은 이인제씨가 김대중씨를 포함한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여당 경선 1차투표에서 여론조사 3등의 이회창후보보다 반에도 훨씬 못미친 득표를 한 것은 경선 자체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렇다고 경선 승복을 배반한 것이 온당한 일이냐고 묻자 이들은 "경선은 당내용일뿐" 이라고 괴상한 논리를 폈다.

정상적 사고로는 이해가 안되는 이런 주장에 이인제씨 지지자들이 어느 정도 동조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나의 설명은 되겠다는 생각이다.

후자에 관해선 이회창후보가 자신의 '대쪽' 이란 상표를 내던진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아들의 병역문제가 결정타의 하나지만 3金 청산을 내건 그는 경선에서도, 그 이후에도 3金 아류 (亞流) 의 정치행태를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경선에서 92년 김영삼 (金泳三) 후보가 그랬던 전략을 구사했고, 최근엔 공작정치의 혐의가 있는 비자금 폭로를 묵인했다. 국민은 92년 국민이 아닌데 3金 청산의 수법은 92년식 정치행태로 나타나니까 깨어 있는 국민이 등을 돌리는 것이란 지적이다.

국민은 30여년 지속된 권위주의 정치와 3金식 패도 (覇道) 정치에 사실 식상해 있다.

이는 정권교체의 기치를 내건 김대중후보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그의 지지율은 그의 시멘트 지지층을 모두 긁어 모은 수준을 약간 상회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인제 신드롬은 이런 틈을 비집고 솟아난 기형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같다. 이 이상한 이인제 신드롬의 향방이 대선에서 어떻게 결말날지가 궁금해진다.

그것이 이번 대선의 주요한 변수의 하나로 떠오른 것은 분명하다.

[이수근 편집부국장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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