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 열린 ‘개성문’ … 북한, 통행 차단 나흘 만에 귀환만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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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상품들을 운송하던 차량들이 16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국사무소 주차장에서 출경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개성공단의 통행을 막았던 북한이 16일 ‘귀환만 허용’ 카드를 꺼내 들었다. 통행 전면 차단(9일)→전격 해제(10일)→재차단(13일)에 이어 내놓은 수다. 이종주 통일부 홍보담당관은 이날 “북측이 오전 9시20분쯤 남측에 귀환 인원·차량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허용한다는 동의서를 보내왔으나 이날 공단으로 들어가려던 방북 예정자 655명에 대해선 통보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단에 발이 묶였던 우리 국민 294명이 13일 이후 나흘 만인 이날 오후 남쪽으로 내려왔다. 공단에 체류하는 남측 인원은 431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공단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어 입주 기업들에 필요한 원자재와 난방용 가스 공급 등은 이뤄지지 못했다. 또 당초 이날 내려오려던 총 453명의 남측 인원 중 159명이 귀환하지 않고 공단에 남았다. 한 당국자는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지 못할 경우 조업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해 일부가 남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내려가는 것만 허용하고 올라오는 것은 막은 조치를 놓고 ‘인질 논란’은 피하되 ‘압박’은 계속한다는 의도를 보여 줬다는 해석이 많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대남 관계와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앞으로도 개성공단을 쥐락펴락하면서 압박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당국은 북한이 공단 내 남측 인원을 상대로 한 이른바 위법 행위 조사를 벌이는 등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긴장을 재조성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이날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열린 통일고문회의(대통령 자문기구)에서 이홍구 의장은 “(현 상황은) 간단히 마무리될 문제가 아니며 군사·정치적 문제와 함께 중소기업 등 국민의 문제가 개입돼 있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볼모화’하려는 노림수에는 정부에 공단 포기냐, 대북 정책 변화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도 포함된 것이란 지적도 있다. 북한 스스로 문을 닫는다고 선언하지는 않겠지만 정부의 대응을 본 뒤 공단을 사실상의 조업 불가능 상태에 빠뜨려 정부나 기업이 어쩔 수 없이 나가도록 만드는 극단적 복선까지 깔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일각에선 북한이 다음 수순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군사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정부 “모든 사태는 북한 책임”=정부는 이날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 명의로 북한의 통행 차단 조치가 계속될 경우 정부도 ‘대응 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하는 성명을 냈다. 개성공단 고립 사태가 시작됐던 9일 이후 정부의 첫 성명 발표다. 김 대변인은 “통행 제한·차단 조치로 우리 기업들이 입는 생산 활동 차질과 경제적 손실 등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밝혀 둔다”고 강조했다. 또 “자유 왕래 없이는 공단의 안정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공단 운영을 정상화하라는 강력한 촉구인 동시에 지금까지 발생한 손실은 북한이 책임질 대목이며, 북한이 앞으로도 차단 조치를 계속할 경우 개성공단 운영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는 경고다.

김 대변인은 그러나 공단 폐쇄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엄중한 현 상황을 안정적인 상황으로 돌리려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수위를 조절했다.

채병건·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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