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약속어음 대량 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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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위조된 약속어음이 시중에 대량 유통되고 있다.

특히 전문가도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된 이 어음들은 지급만기일이 모두 10월말로 일제히 지급을 요구할 경우 사채업계등 지하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서울 명동의 사채업자인 金모 (34.여) 씨는 지난 8월말 조모 (33) 씨로부터 중견 제화업체인 A사가 W은행 충무로지점에서 발행한 1억원짜리 약속어음 (자가08902199) 을 현금으로 할인해 줬다가 뒤늦게 위조어음인 사실을 발견하고 지난달말 서울지검에 신고했다.

홍모 (51) 씨도 조씨의 부탁을 받고 S건설이 발행한 2억4천여만원짜리 약속어음을 할인해 줬다가 피해를 봤다.

A사측은 지난 6월19일 공사대금으로 J디자인에 지급한 1억원짜리 약속어음과 외형상 똑같은 위조어음이 발견되자 지난달 13일 서울 중부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S건설측은 직접적인 금융피해가 없는데다 신용도가 떨어질 것을 우려, 쉬쉬하며 숨기고 있다.

검.경찰은 위조된 어음의 인쇄기술이나 용지등이 육안으로는 구별하지 못할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대규모로 위조된 점등으로 미뤄 전문 위조조직에 의한 범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채업자 김씨는 "어음할인 당시 은행에 문의해 진성어음이란 통보를 받은후 돈을 내줬다.

A사 명의의 위조어음은 대표이사 K모씨의 성이 소모씨로 바뀌었을뿐 외형상 진성어음과 똑같아 전문가도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고 말했다.

김씨는 또 "지난 8월중순 조씨가 유력 일간지 회장이 배서한 2억5천만원짜리 H기업 발행어음을 가지고 와 할인을 요구했으나 신문사측이 자금융통을 위해 어음을 할인할 리 없다는 생각에 할인해주지 않았다" 며 "S건설과 A사 이외에도 또다른 S.M.H사등 중견기업 명의의 위조어음이 최근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고 밝혔다.

어음을 할인하고 자취를 감춘 조씨는 지난달 5일 피해자인 김씨에게 연락, "사채시장에서 큰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신용도가 확실한 대기업 어음 수백장 액면가 수백억원 어치를 위조했다.

배후세력이 있으니 찾지 말라" 고 위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당시 "부도어음을 헐값에 사들여 약품처리를 한 뒤 미리 제작한 대기업 명의의 금형과 도장등을 이용, 수백장의 어음을 위조했으며 어음만기일이 대부분 10월말~11월초로 돼있어 대형 금융사고가 일어날 것"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 검찰은 발견된 위조어음들이 컬러복사가 아닌 금형과 대기업 대표이사의 인장까지 제조해 정교하게 인쇄된 점으로 보아 전문위조단이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 어음만을 노려 조직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또 사채업자가 어음을 할인해준 뒤 만기일까지 은행에 예치하기 때문에 상당기간 범행이 탄로날 가능성이 적은데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신분공개나 신용하락을 우려해 신고를 꺼린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미뤄 피해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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