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속으로 우는 ‘철인’ 주희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팀 동부에 접전 끝에 패한 뒤 주희정(32·KT&G·사진)은 “김일두가 다치지 않았으면 우승은 우리의 것이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다시 한번 칼을 갈고 강철 체력으로 무장한 주희정의 올 시즌 기록은 놀랍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눈물을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 주희정은 15일 현재 평균 14.8득점, 4.7리바운드, 8.5어시스트, 2.3가로채기를 기록하고 있다. 역대 가드 중 최고의 득점력과 어시스트 능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표 참조>

특급 가드 중 가장 실책이 적은 안정성과 웬만한 장신 포워드 못지않게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투지도 놀랍다. 야투율도 가장 좋고 출전 시간도 38분이 넘는다. 주희정의 한국 최고 포인트가드 등극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선천적 재능이 아니라 후천적 노력의 결과로 나온 것이어서 가치는 더욱 크다.


다른 팀 프런트까지 그를 칭찬하고 있다. 모비스의 이동훈 홍보팀장은 “엄청난 기록이다. 이 정도의 개인 기록은 과거에 없었기 때문에 정규리그 MVP는 주희정이 받아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희정은 수퍼맨처럼 활약하고 있는데 팀은 아니다.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만신창이다. 시즌 개막 직전 유도훈 감독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임한 것이 서막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인 선수 캘빈 워너가 발목을 접질렸다. 외국인 선수가 한 명 빠지면 팀은 그냥 무너져 버리는데 KT&G는 주희정의 힘으로 버텨냈다. 그러나 동료들은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양희종이 다쳐 시즌을 마무리했고, 워너는 부상에서 복귀하자마자 대마초 파문으로 팀을 나가야 했다. 주희정은 낙오하는 동료들을 가슴에 품고 고지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KT&G는 15일 KCC에 66-89로 대패했다. 주희정은 집중 수비 속에서도 13득점에 7리바운드, 9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했지만 동료들의 도움은 미미했다. 팀은 27승25패로 7위다. 김호겸 KT&G 사무국장은 “3년 동안 겪을 일을 한 시즌에 다 겪고 있다. 그래도 팀이 승률 5할이 넘는 것은 주희정의 힘이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