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공방으로 변질 안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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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 (金大中) 총재의 비자금설이 폭로되고 난뒤 전개되고 있는 관련당사자들의 대응이 진실을 밝히는 쪽보다 정치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폭로한 측이나 당한 측 모두가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실질적인 접근보다는 으르기와 되받아치기의 정치공세와 역공세로 끌고 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이번 선거가 대형폭로전으로 비화할 것이며 자칫하다가는 선거판 자체가 흔들릴 위험도 크다.

먼저 신한국당의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

이번 폭로회견에서 일부 자료를 내비치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 6백70억원의 비자금 전체그림을 그리기는 매우 미흡하다.

그러면서 2차, 3차 폭로가 있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사건의 극대화를 위한 정치적 계산인지는 모르겠으나 구체적인 자료가 있다면 당연히 이를 공개해야 한다.

또 말로만 검찰의 수사를 촉구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있다면 관련자료를 첨부해 검찰에 수사의뢰를 해야 할 것이다.

국민회의의 대응 역시 석연치 않다.

신한국당의 폭로가 정치적 음해라면서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 이회창 (李會昌) 신한국당 총재의 경선자금과 함께 국회에서 조사를 벌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벌어진 상황은 김대중총재의 비자금 문제인데, 여기에 다른 것을 끼워넣으니 물타기나 하자는 얘기밖에 안된다.

정말 사실이 아니라면 당당하게 폭로당사자를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로 하여금 사실을 규명토록 해야 한다.

검찰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제1야당에, 그것도 지지도가 제일 높은 후보에 대해 검찰이 없는 사실을 조작할 수 있겠는가.

검찰 역시 이번 사건을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이번 사건은 선거때 흔히 있는 그런 식의 폭로가 아니다.

집권당과 인기도가 가장 높은 후보를 가진 제1야당 사이의 생사가 걸린 투쟁이다.

만일 이를 허술히 다루었다가는 나라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미뤄 놓을 수도 없다.

양측으로부터 협조를 받아 빨리 진실을 규명해 정상적인 선거를 치를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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