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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의 꿈과 원유가격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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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 30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 10년 만에 장기 집권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확보했다. 지난 2월 15일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승리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포퓰리스트·혁명가·독재자 등 극단적으로 나뉘지만 베네수엘라 국민의 신임이 여전함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가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내세운 ‘21세기 사회주의’ 정책이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커지고 있다.

그는 1999년 권력을 잡은 이후 좌파적 성향의 경제·사회 정책을 실시했다. 미국의 대안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그의 정책이 적잖게 성공했다는 평가는 다른 남미 국가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서는 데 일조했다. 2005년 차베스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자신의 경제정책의 방향을 ‘21세기 사회주의’라고 밝혔다. 이후 전격적으로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그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다. 이러한 정책 흐름은 최근 개헌 성공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차베스가 올해 들어 국가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경제 부문은 농업이다. 농업은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의 7%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농업을 주목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식량부족과 연 30%가 넘는 인플레이션이 낳은 사회불안을 해소해 사회주의 혁명을 지속하기 위한 바탕이 농업 부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베네수엘라 상공회의소는 가격·외환 통제, 고정환율제에 따른 베네수엘라의 화폐 가치 고평가, 토지소유제도의 불안 등 차베스 정책이 모든 문제의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야당도 일방적인 사회주의 정책으로 내전이 유발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집권세력과 견줘 야당의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왼쪽으로 기울고 있는 차베스의 정책 전환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지난해 3월 3일 차베스는 사회주의를 더 한층 심화시키기 위해 대대적으로 개각을 단행하면서 ‘새로운 생산관계 및 재산권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생산모델 토대 설정’을 선언했다. 베네수엘라 경제가 자본주의와 완전히 결별하고 새로운 체제로 이행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런 차베스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차베스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차베스와 오바마가 관계를 개선하려고 할 만한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차베스의 반미주의는 미국 자체에 대항한다기보다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성격이 짙다. 게다가 현재 두 나라가 처한 경제상황도 대화와 협력 가능성을 키워 주고 있다. 세계경제 위기 탓에 차베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 처지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수입해야 할 뿐 아니라 차베스의 도움을 받아 중남미에서 입지를 회복해야 한다. 이런 필요조건 덕분에 두 나라 관계가 정상화되면 차베스의 권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그렇다고 차베스 정부의 앞날이 탄탄대로라는 얘기는 아니다. 베네수엘라 경제 구조가 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과도한 석유 의존이 화근이다. 이 나라 외화 수입 90%와 정부의 재정수입 50%가 석유산업에서 나오고 있다. 더욱이 석유산업은 차베스가 추진하는 ‘21세기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복지정책의 돈줄이다.

세계 경제위기로 석유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수출 가격이 배럴당 110달러에서 40달러대로 곤두박질했다. 베네수엘라의 다른 산업이 최근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가하락으로 발생한 석유산업 침체를 대신해줄 정도는 아니다. 원유가격 대폭락이 차베스의 사회주의 밑바탕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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