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맛같은 신혼 9개월 박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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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지난 2008년은 그녀 인생의 가장 큰 터닝 포인트였다. 배우로서 성공가도를 달렸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설레는 맘으로 2세를 기다리다 유산의 아픔에 절망했다. 행운과 불운이 함께 찾아왔던 지난 1년, 그 시간을 건너온 서른둘 박은혜의 삶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 meet the womanscene 01>> 11년 만에 찾아온 터닝포인트…

2008년은 박은혜에게 절대 잊지 못할 한 해였다. 연기자로서, 또 여자로서 그녀의 삶에 적잖은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인기 드라마‘이산’의 효의 왕후 역으로 대중과 교감했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밤과 낮’에서 연기 력을 인정받아 베를린 레드 카펫에 섰다.

지난 1998년 처음 카메라 앞에 선 후 대중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시기가 바로 작년이었다. 어느덧 데뷔 11년 차, 평소 지명도나 인기에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작년 은 예년보다 훨씬 행복하고 즐거운 1년이었다.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여자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예쁜 가정을 꾸렸으니 그럴 수밖에. 신접살림을 차린지 아직 1년도 안돼서 요즘도 한창 신혼 재미에 빠져 지낸다. 배우로서의 성공과 인생 최고의 이벤트인 결혼을 한 번에 잡은 지난 1년은 그녀의 삶에서 아주 큰 터닝 포인트였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마냥 기분이 좋거나 행복에만 빠져 지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많이 달라 졌거든요. 특히 결혼을 하니까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변하더라고요. 30대를 넘어가면서 스무 살 시절에 비 해 정서적으로 많이 달라졌는데 거기에 결혼이 겹치니까 짧은 시간에 스스로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춘기 때 겪었던 변화보다 더 많이 바뀐 느낌이에요.”

올해 서른두 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둘만의 가정을 꾸린 여자에게 찾아온 변화란 뭘까. 그녀는 결혼 후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서 조급증과 욕심을 덜어내게 됐다고 고백한다. 드라마‘대장금’의‘연생이’나‘이 산’의‘효의 왕후’는 모두 순하고 한없이 착한 여자였지만 실제 박은혜는 제법 욕심도 많고 때로는 까다로운 성 격이었단다. 예전에는 촬영 한번을 해도 무조건 더 많은 분량에 등장하고 싶어 조바심을 내고, 무조건 예쁜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요즘은 인기나 외모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접고 있다. 성공 하겠다는 마음을 버린 건 아니지만 쓸데없는 집착을 줄이는 대신 더 많은 만족을 얻기 위해서다.

“드라마에서 저는 주로‘두 번째 여자’였어요. 주인공은 아니고 그냥 주요 등장인물 정도에 그치는 역할이죠. 예전에는 그게 싫었어요. 무조건 주인공이길 바라고, 주연이 아니면 서운했죠. 하지만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한도 끝도 없잖아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먹고 눈높이를 조금 낮춰보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더 많은 일에 만족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일부러 마인드컨트롤을 했지만 자꾸 연습해 보니 요즘은 저절로 그렇게 돼 요. 집착을 벗으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지네요.”

그녀가 여유와 웃음을 찾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남편과의 만남이다. 결혼후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안정됐고, 배려심 깊고 차분한 성격의 남편과 조금씩 닮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은혜는 지난해 4월 결혼해 요즘 신혼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이제 겨우 9개월 차, 아직 제대로 된 싸움 한번 안 한 알짜배기 신혼이다. 살림 솜씨는 좀 늘었냐고 물었더니“촬영 때문에 집 비우는 날이 많아서 어지간한 주부 한 사람 몫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것같다”며 웃는다.

scene 02 4살 연상 남편과의 알콩달콩 일상…

“저도 살림 솜씨가 좀 늘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된 게 계속 제자리걸음이에요. 2월부터는 촬영 일정이 뜸하고 여유가 있으니까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배워볼 생각이에요. 사실 지금까지는 좀 철없는 아내였거든요. 가계부를 선물받았는데 그 다음날 딱 하루쓰고 아직 한번도 안 열어 봤어요(웃음).”

남편 김한섭씨는 4살 연상의 사업가다. 그는 역시 사업가였던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 자신의 아내도 커리어 우먼보다는 내조 잘하는 스타일의 여자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연기자 아내의 일상도 잘 이해해 준다. 다만 한 가지, 아내의 노출 연기에는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박은혜는 이날 인터뷰 화보를 촬영할 때도 노출이 심한 옷은 가급적이면 빼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절대로 못 입게 해요. 제가‘일하려면 가끔 야한 옷도 입어야 한다’고 말하니‘그럼 배우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 사람은 제가 배우라서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그런 이유는 대지 말라고 말해요. 하긴, 세상 어떤 남자가 자기 아내 속살 보이는 걸 좋아하겠어요.”

그렇다고 보수적이거나 고루한 성향의 남편은 아니다. 쉬는날 집에서 밥 차리고 설거지하는 아내가 안타까워 주말만 되면 늘 외식하자며 손을 잡아끈다. 얼굴 알려진 연예인이라 아무래도 외식보다는 집에서 쉬는걸 더 좋아하는데도‘모처럼 쉬는 날 집에서 밥만 하게 만들 순 없다’며 굳이 문밖으로 나서게 만든다. 박은혜가 그래도 집에서 먹겠다고 고집하면 자신도 부엌으로 들어와 이것저것 도와주거나 포근하게 안아주면서‘힘들텐데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로맨티스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기회는 적은 편. 남편은 사업으로, 아내는 촬영으로 바빠 좀처럼 짬이 나지 않는다. 가끔 시간이 맞아 저녁을 같이 먹을 때도 와인으로 가볍게 분위기를 내거나 몸에 좋은 홍삼 달여 한 잔씩 나눠 마시는 게 데이트의 전부다. 그래도 치즈나 크래커, 과일 송송 썰어 예쁜 접시에 담아놓고 남편과 함께 먹는 그 시간이 요즘 그녀에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같이 있는 것만 으로도 좋다는 얘기가 뭔지 이제야 실감이 나요. 결혼을 했다는 건‘나’를 버리고‘우리’를 택한 거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나 혼자 결정할 수 없고 늘 남편 생각도 같이 해야죠. 사실 그게 불편하고 때로는 싫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혼자보다는 둘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몇 년만 더 살아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하는데 저는 안 그럴 것 같아요(웃음).”

scene 03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이름, 엄마…

그녀는 남편 얘기를 할 때마다 입이 귀에 걸린다. 휴대전화 배경화면도 웨딩 사진이고 인터뷰 내내‘우리 오빠~’‘우리 오 빠~’하며 남편 자랑에 여념이 없다. 박은혜의 말을 빌리면 남편 김씨는‘결혼 상대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남자’란다. 배려심이 깊고 늘 연애하는 감정으로 아내를 대하기 때문에 지금도 마치 연인 같은 느낌이 든다고. 남편 얘기만 나오면 그녀는 곧바로‘여자 팔불출’이 된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지난해 그녀에게 꼭 좋은 일만 생긴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큰 아픔도 맛봤다. 뱃속에서 자라던 아이가 세상의 빛을 채 보기도 전에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얻은 허니문 베이비. 생애 최고의 선물이 될 거라 믿었던 아이에게 닥친 사고여서 그녀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견뎌내야 했다. 지난해 8월 유산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나 때문에 아이가 잘못됐다’는 죄책감에 식음을 전폐할 정도 였다. 슬픔과 충격을 겨우 추스르는 데만 한 달 이상이 걸렸다.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됐는데 돌아보면 꼭 10년도 넘은 것 같아요. 아마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함께 겪으면서 감정 변화가 심했기 때문인가 봐요. 하지만 나쁜 일은 빨리 잊는 게 좋잖아요. 많이 아팠지만 앞으로는 더 좋은 일이 생기겠죠.”

괴로운 마음을 떨쳐낼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의 따듯한 위로와 관심 덕분이었다. 물론 그녀가 가장 많이 의지한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더 큰 감동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이름도 모르는 네티즌들 이었다.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후,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홈페이지에 찾아와‘나도 유산 경험이 있는데 괜찮다, 힘내라’는 글을 남겼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위로였지만 때로는 친구들의 조언보다 훨씬 큰 힘이 됐다.

사실 그녀는 결혼하면 연예 활동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얼굴이 알려진 직업이어서 본의 아니게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스캔들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지 모른다는 조급함도 느끼며 초조하게 살아야 했다. 박은혜는 그런 삶이 싫어서 모두 그만두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변했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관심이 늘 부담으로 작용하는 줄만 알았어요.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이 더라고요.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행복하고 즐겁잖아요. 괴로울 때 함께 고민해 주고 즐거울 때 같이 기뻐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건 든든한 일이니까요.”

직업의 특성상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속으로 외로움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 화면 속에서는 늘 활기차다가도 카메라가 꺼지면 마음의 병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남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외롭고 우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박은혜도 한때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무척 초연하다.

scene 04 진짜 어른이 되고 싶은 서른둘 여자…

“예전에는 내가 연예인이니까, 아니면 배우니까 남보다 훨씬 유별나고 괴로운 삶을 산다고 생각했어요. 겉으로만 번지르르하지 속으로는 남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라고 느꼈거든요. 하지만 나도 남들이랑 똑같은 사람이고 내가 힘든 만큼 남들도 힘든 일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제가 감독님을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면, 직장 다니는 우리 언니는 회사 부장님이나 과장님이 무섭고 부담스럽잖아요. 다 똑같은 거죠. 나 혼자 유별난 상황에 놓였다는 생각을 버리니까 세상에 고민할 일이 하나도 없어요(웃음).”

몇 년 전과 비교해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스스로 대견 하단다. 그녀는 지난해 영화제 시상식에서“서른을 넘겼으니 이제 연기로 승부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아직 나이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20대를 넘겨보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금씩 감이 잡힌단다.

“제가 우리 나이로 서른둘인데 생일이 빨라서 친구들은 서른셋이에요. 아직 젊지만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준비를 조금씩 시작할 때가 된 거죠. 요즘은 작은 일에 파르르 떨면서 분노하거나 화내지 않고 좀 너그럽고 여유 있게 주위를 둘러보면서 살려고 노력해요.”

예전에는 자기보다 나이 어리고 더 예쁜 후배들이 TV에 나오면 괜히 조급하고 초조했다. 하지만 요즘은 소위 자기보다‘잘나가는’동료를 봐도 경쟁심보다는 잘되길 빌어주는 마음이 더 크다. 욕심을 버리고 소탈한 마음을 가지려고 애써 노력했더니 생활이 늘 여유롭고 편안하단다.

박은혜는 요즘 자신의 미래에 대해 떠올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배우들은 흔히 자신의 미래를 점치면서‘연기하다 무대 위에서 죽겠다’라든지‘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되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뇐다. 하지만 그녀는 좋은‘배우’라는 평가보다 그냥 좋은‘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듣고 싶단다.

왜냐하면 연기자로 살았던 11년의 삶도 중요하지만 카메라가 꺼진 후의 일상도 그녀에겐 똑같이 소중하니까.예전에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관심이 늘 부담으로 작용하는 줄만 알았어요.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이더라고요.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행복하고 즐겁잖아요. 괴로울때 함께 고민해주고 즐거울때 같이 기뻐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건 든든한 일이니까요.

취재_이한 기자 사진_조세현(i-co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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