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읽기]일본의 전통적 한국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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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오쿠마 시게노부 (大외重信) 라는 인물이 있다.

명치시대 일본의 정치가로, 와세다대 총장.외무장관.총리등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그가, 1910년, 한일합병이 이루어지고 난 직후, "조선인을 통치하는 일은 중국인을 다스리는 일보다 용이할 것 같다" 는 전망을 피력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일이 있다.

"남부의 조선인은 거의가 일본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우리 일본인과 가깝다.

원래 이 남부지방은 고대에는 일본의 식민지였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 일부 전공학자들 사이에는 낯선 얘기가 아니지만,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오쿠마의 이런 발언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발언 앞에서 단지 감정적인 충격에 그치지 말고, "어떻게 이처럼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이 대학총장을 지낸 유명 정치가의 입에서 나올 수 있었단 말인가" 라는 질문을 제기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일본의 여러 문헌들을 뒤적여보면, 우리는 오쿠마의 발언에서 느낀 충격을 몇배로 증폭시키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의 남부지방은 고대에는 일본의 식민지였다" 는 식의 주장은 무려 1천년 이상 수많은 일본인들에 의하여 되풀이되어 온 것으로, 오래전부터 하나의 '상식' 에 해당하는 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720년에 편찬된 일본의 가장 오랜 역사책 '니혼쇼기 (日本書紀)' 에는 3세기초 신공황후 (神功皇后) 라는 인물이 한반도를 정복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신공황후의 한반도 침략은 신의 계시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며, 그 당시 신라왕은 신공황후가 이끄는 군대를 멀리서 보기만 하고서도 겁을 집어먹고 기절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곧바로 항복하였고, 이어서 백제와 고구려도 항복을 하였다고 한다.

명색이 역사책이라는 '니혼쇼기' 에 이런 터무니없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후 1천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수의 일본인들이 그 기록을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로 믿고, 그것에 근거하여 그들의 한국관 (韓國觀) 을 정립해 왔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의 한국관이란 말할 나위 없이 철저한 멸시로 일관된 것이었다.

우리나라를 '1천년 동안 일본의 속국이었던 작은 오랑캐' 라고 부른 것은 유학자인 나카이 치쿠잔 (中井竹山) 이었고, 우리나라가 일본을 '황조의 법에 따라 섬겼다' 고 주장한 것은 국학자인 모토오리 노라나가 (本居宣長) 였으며, '조선은 옛날부터 일본의 신하였는데 요즘 와서 점점 거만해지고 있으니 그 나라의 풍속과 종교 등을 상세히 알아서 반드시 수복해야만 한다' 고 외친 것은 명치유신의 사상적 기초를 놓았다는 요시다 쇼인 (吉田松陰) 이었고, 신공황후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한반도를 침공했던 전례를 본받아 명치천황이 직접 한국 정복전쟁의 선두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일본 근대화론의 제일인자인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 였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인용한 오쿠마의 말은 이처럼 1천수백년 동안 면면히 계승되어 온 전통 (?

) 의 연장선상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나온 발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셈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위에서 얘기된 바로 그러한 '전통' 이 일본의 정신사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늘 인식해야 한다.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일본에 대해 새삼 무슨 적개심을 고취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다.

우리는 일본을 가능한 한 정확히 알고서 일본과 만나야 하는 바, 이때 우리가 일본에 관해 알고 있어야 할 사항 가운데는 '일본인들이 지난 1천수백년 동안 한국을 어떻게 보아 왔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도 포함된다는 상식을 얘기해 두고자 하는 것뿐이다.

이동하 <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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