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을 넘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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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백두대간 종주붐은 88년부터 일기 시작했다.

그 선두주자는 대학 산악부원들. 90년대에 들어와 전문 산악인들도 동참했고 93년부터는 일반 산악인들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대중화 됐다.

급기야 95년 이후에는 백두대간 전문안내 산악회까지 등장해 이제는 체력과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많은 화제의 인물을 낳았다.

백두대간 종주자중 최고령은 95년 부산 메아리산악회 안내종주에 참가한 정문현씨. 당시 72세였다.

최연소 종주자는 같은해 부산 메아리산악회 낙동정맥 안내종주에 참가한 박현철 (당시 13세) 군이다.

박군은 백두대간 안내종주에도 빠짐없이 참가해 완주를 했다.

부산 운봉산악회 고문인 이동화씨는 회갑기념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백두대간을 종주하기 전에 이미 낙남정맥과 낙동정맥을 종주했으며 젊은 사람도 엄두를 내기 힘들 정도인, '하루 30㎞ (도상거리 기준) 전진' 의 기록을 세우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문경 새재산악회의 김기태 (39) 씨와 김영미 (37) 씨 부부는 95년 부부가 함께 종주를 해 화제를 모았다.

주말을 이용해 구간 종주를 했던 이들은 10년동안 매일 새벽에 일어나 2시간 동안 구보를 하며 체력을 키웠다고 한다.

수원 그린피아산악회의 권동현 (40세) 씨는 93년에 이어 96년에도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권씨는 두번 다 무지원에 단독종주를 했으며 산에서 나는 솔잎과 산나물만 생식하면서 모든 끼니를 해결했다.

거인산악회의 안내종주에 참가한 석봉수 (49) 씨는 처음에 혼자 시작했으나 나중에 봉철 (45).봉기 (40) 두 형제가 함께 참가해 삼형제 모두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화제를 낳기도 했다.

안동 히말리스트클럽의 김철현 (25) 씨도 혼자 종주에 나섰지만 셋째 동생이 혼자 가는 것을 안스러워했던 맏형 호현 (33) 씨가 배웅을 나섰다 형제가 함께 종주를 했다.

이때 둘째와 막내는 지원조로 뒷바라지를 하는 바람에 온집안이 백두단간에 땀을 쏟는 기록을 남겼다.

덕유산악회의 길춘일 (32) 씨는 '거지 종주' 란 이색적인 종주로 유명하다.

거지종주란 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음식을 얻고 서낭당이 있으면 반드시 들러 음식을 챙긴데서 붙여진 이름. 길씨는 종주후 '71일간의 백두대간 종주기' (수문출판사 刊) 를 펴냈으며 97년부터 백두대간 안내산악회인 고산자산악회를 만들어 백두대간 안내종주도 하고 있다.

수원의 장영호 (41) 씨와 아들 조해 (16) 군, 친구 김성룡 (39) 씨와 그 아들 상훈 (16) 군은 부자 2팀이 함께 종주를 해 관심을 끌었다.

장씨와 김씨 부자는 95년부터 종주를 시작해 1년만에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며 백두대간 종주가 끝나자마자 40일에 걸쳐 낙동정맥도 종주했다.

수원지방법원에서 구두를 닦는 장씨와 목욕탕에서 일하는 김성룡씨는 "어렵게 살지만 아이들에게 아빠의 참사랑을 보여주고 싶어 종주를 했다" 며 "먼 훗날 함께 백두대간을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 고 말했다.

장씨 부자는 텔레비전 공익광고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으며 종주기인 '아들아 세상을 품어라' (뜨인돌 刊) 를 펴내기도 했다.

97년 6월부터 서재철씨를 단장으로 하는 녹색연합 생태탐사대가 3개월에 걸쳐 백두대간 탐사를 벌였다.

이들은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식생분포와 생물을 조사해 백두대간 종주에다 현장연구와 환경운동을 결합시킨 인물들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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