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인기짱 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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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벅이야기를 들려주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있는 이예진양. 반 친구들은 "예진이의 구연동화가 너무 재미있다"며 계속해서 들려달라고 조른다.

(사진)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선생님에게 사랑 받고 친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면 발표를 잘해야 한다. 각종 동화구연대회와 시낭송 대회 상을 휩쓴 이예진(11·인천 혜광학교5)양이 발표 잘 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자, 오늘 배운 시조를 낭송할 사람?” “저요!” 손을 번쩍 든 학생은 무안구증으로 한쪽 눈을 상실한 이예진양.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순신 장군의 시조를 또박또박 외워나갔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이양은 학교에서 발표왕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이미 각종 동화구연 및 시낭송 대회에 참가,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양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몸의 이상 탓에 사람 많은 곳을 꺼려 자칫 외톨이로 자랄뻔했던 이양에게 동화구연은 ‘삶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물론 여기엔 어머니 문영리(37)씨의 자식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동화는 다양한 인간상을 통해 감수성을 길러준다. 또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맛깔 나게구연하기 위해 연습하다 보면 자신감과 표현력도 는다. 문씨는 “예진이가 동화구연을 하면서부터 매우 밝아지고 말이 많아졌다”며 흐뭇해했다. 그는 “읽은 동화책만 벌써 300권이 넘는다”며 “동화구연에 적합한 내용으로 개작하다 보니 상상력과 창의력도 풍부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양은 매일 1시간 이상 책을 읽는다. “예진이와 같이 책을 읽고 캐릭터 분석이나 호흡방법 등을 고민해요. 책 내용에 관해 대화하다 보면 의견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능력이 길러지거든요.”

 문씨는 그간의 마음고생도 털어놓았다. 그는 “예진이가 심장도 좋지 않고 한 쪽 귀도 잘 안 들려서 늘 노심초사했다”며 “심장은 첫돌 때 수술한 후 괜찮아졌고 귀 역시 한쪽이 정상인보다 더 많이 발달해 소리도 잘 듣는다”고 말했다. 두 눈 다 못볼까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한 눈은 지금까지 이상이 없다.

 문씨는 “내성적이어서 친구들에게 말 한마디 못 건네는 예진이가 잘 어울리고 밝은 아이가 됐으면 했다”면서 이모저모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양이 2학년이 되던 해 여름방학 통지표에 담임선생님은 “동화구연에 소질이 있어 보이니 한번 시켜보라”고 적어줬다. 문씨는 백화점 문화센터 동화구연 수업에 이양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했어요. 집에서는 열심히 연습하는데 막상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해보라고 하면 ‘못하겠다’며 울더라고요.” 재미있는 이야기 듣는 것이 좋아 6개월째 꾸준히 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선생님이 그만둔다고 했다. 문씨는 “예진이가 이제야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개인적으로라도 봐줄 수 없느냐”고 전화로 통사정했다. 문씨의 정성에 감동한 강사는 이양을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해서 무료로 지도를 계속했다.

 개인지도는 훨씬 효과적이었다. 자유롭게 선생님의 말투를 따라 할 수 있었고 틀려도 민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고 판단한 문씨는 이양을 동화구연대회에 내보내기로 했다.

 강사는 이양이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도록 몇몇 친구들 앞에서 동화구연을 해보게 했다. 처음에는 2명, 두 번째는 5명…, 순차적으로 관객을 늘려갔다. 문씨도 학교 선생님에게도 부탁해 학교 친구들 앞에서도 연습하도록 했다. 이양은 점차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루 5~6시간씩 연습한 결과 첫 대회에서‘금상’을 받았다. 이양은 “상을 받으니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며 “이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먼저 말을 걸 용기가 생겼다”고 전했다. 여러 대회에서 큰 상을 받자 텔레비전 출연 제의도 들어왔다. 이양은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시 낭송과 요들송에 도전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 문씨는 “말을 잘하면 자신감이 생겨 다른 것도 잘하게 되는 것 같다”며 “아이의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대회나 발표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신청한다”고 귀띔했다.

 이양은 더 이상 친구들이 먼저 놀자고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원하는 일도 많아졌다. “뮤지컬 배우도 하고 싶고, 선생님·탤런트·성우…,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하는 게 좋아요.”


프리미엄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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