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파리의 벨리브 성공 비결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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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늦추위가 조금씩 누그러지면서 프랑스 파리에는 요즘 다시 자전거 물결이 일고 있다. 특히 파리 주변 도시들이 파리의 히트작인 매우 저렴한 무인 자전거 대여 시스템 ‘벨리브’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자전거 이용객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럭비공 모양으로 생긴 파리시를 둘러싼 30여 개 도시에서 올해 안에 300여 개의 대여소가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파리 주변에 새로 생기는 대여소는 모두 파리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교외 사람들이 아침에 자전거를 빌려 타고 파리에 온 후 다시 자전거를 타고 퇴근해 집 앞의 대여소에 돌려줄 수 있다.

서울 등 한국의 대도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벨리브를 벤치마킹하기위해 최근 잇따라 파리를 찾고 있다. 그러나 벨리브를 도입하려면 먼저 고민할 것들이 적지 않다. 우선 교외 도시와의 공조다. 분당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서울 강남구에 있는 회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파리의 마케팅 전략도 배워야 한다. 파리는 서울보다 지형이 훨씬 평평한데도 언덕길에서는 이용자가 현저히 줄어든다. 그래서 파리시는 고지대에서는 공짜 또는 할인 요금제를 도입했다. 또 자전거를 타면 걷거나 차를 탈 때보다 마시는 공기 양이 훨씬 많다. 때문에 깨끗한 공기 역시 중요하다. 최근 파리시의 조사에 따르면 같은 지역에서라도 자전거 전용도로와 일반 차도의 대기 오염 농도가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파리시는 가급적 전용 도로를 이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파리의 미세 먼지 농도는 제주도보다도 훨씬 낮은데도 말이다. 우리도 파리처럼 자전거 전용 도로를 크게 늘려야 한다. 자전거 이용객의 안전은 물론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다.

또 자전거 이용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나 덴마크 코펜하겐보다 파리가 더 자전거 도시로 소문난 배경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볼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 새로 나오는 유럽의 관광안내서를 보면 ‘벨리브 관광’이 소개돼 있을 정도다. 서울의 주요 유적지를 잇는 자전거 투어 등 관광 상품 개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에 우리 지자체들이 무턱대고 외국에서 도입한 후 폐기한 정책이 한둘이 아니다. 남들이 성공한 배경을 잘 살펴보고, 배워야 실패하지 않는다. 파리시가 덜렁 대여소만 설치해 놓고 성공한 것은 아니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