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기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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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라는 황진이의 시조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덕 높은 고승을 유혹하는가 하면 유학자 서경덕(徐敬德)과는 흥미로운 로맨스를 벌여 조선 문단의 일각을 꾸몄던 유명 기생이다.

그에 못지 않은 당(唐)나라 때의 기생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설도(薛濤)다. 이름 그 자체는 낯설겠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가요 ‘동심초(同心草)’의 원작사자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라는 내용은 40대 이상의 사람이면 한때 조용히 읊조린 적이 있을 법한 대중가요다.

설도가 지은 ‘춘망사(春望詞)’라는 시를 김소월의 스승인 시인 김억이 번안해 붙였다. 전체 시의 내용을 그대로 살리지는 못했지만 한 단락을 옮겨 지은 노랫말은 애절한 곡조와 함께 해방 직후 어수선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크게 호응했다.

노래에 나오는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라는 내용은 설도의 시 “마음 함께하려는 이와는 맺어지지 못하고, 그저 동심초만을 엮는다(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는 이름난 구절을 의역한 것이다.

설도가 한때 부부의 연을 맺을까 생각했던 대상은 당나라 시인 원진(元<7A39>)이다. 10살 아래의 남자에게 연정이 생겼으나 둘의 사이는 오래가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진을 그리면서 지은 시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 가능성만큼은 충분하다.

그뿐 아니다. 백거이(白居易)와 유우석(劉禹錫) 등 유명 문인, 설도가 머물렀던 쓰촨(四川) 지역을 거쳐간 많은 관료들이 그와 즐겨 시감을 나눴던 기록이 나온다. 설도는 특히 엷은 빨간색을 넣어 시를 적거나 인사를 건네는 용도로 직접 만들었던 종이 ‘설도전(薛濤箋)’으로도 이름을 남겼다.

요즘 5만원권에 그려진 신사임당 모습을 두고 논란이 있다.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얼굴이 어땠으리라고는 누구도 선뜻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의 진짜 모습이 알려진 게 없어서다.

국가에서 정한 표준 영정의 모습과 다르다 해서 5만원권의 신사임당이 “기생을 닮았다” “주모(酒母) 같다”는 비난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기생 황진이와 설도가 억울하겠다. 그림은 그림의 문제로만 따지는 게 옳다. 신분과 직업의 귀천을 따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말이 나온 게 2200여 년 전이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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