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사하라를 가다]上.사막의 블루베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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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엔이 평화유지활동 (PKO) 을 수행하고 있는 곳은 전세계 16개 지역. 현재 70개국에서 파견된 총 2만3천명의 다국적군이 유엔마크를 달고 평화협정 이행 지원과 휴전감시, 비무장지대 순찰등의 임무에 종사하고 있다.

올해로 유엔 평화유지군 투입 7년째를 맞는 서부사하라 현장르포를 통해 PKO의 현주소와 한국군 의료지원단의 활동상을 2회에 걸쳐 알아본다.

서부사하라. 26만6천평방㎞. 한반도 넓이의 1.2배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 전체가 사막이다.

미 중앙정보국 (CIA) 이 발행하는 '팩트북' (97년판)에 따르면 농경지 0%, 상시 재배농작물 0%인 땅. 사하라의 뜨거운 바람이 일으키는 황토색 모랫바람 '시로코' 속에 서있으면 저절로 숨이 막혀온다.

기온은 섭씨 48도. 심할 때는 60도까지 올라간다.

사방에 보이는건 이글거리는 태양과 모래.바위 조각, 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키작은 초목들뿐. 신 (神) 이 버린 땅이 바로 이런 것일까. 이 황무지를 놓고 모로코 정부와 서부사하라 해방전선 (폴리사리오) 이 대립해온지 올해로 만 22년째다.

75년11월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던 스페인이 철수하면서 모로코가 일방적으로 점령했다.

국왕 하산2세가 35만명의 모로코인을 직접 이끌고 서부사하라에 모로코의 붉은 국기를 꽂았다.

이른바 '녹색 대행진' 이다.

서부사하라 유목민인 사라위인이 주축이 된 폴리사리오는 76년 알제리 틴두프에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 (SADR) 이란 망명정부를 세우고 대서양으로 통하는 통로 개척을 노리는 알제리정부의 지원아래 모로코에 대한 무력항쟁을 계속해왔다.

수많은 사상자와 전쟁포로.난민이 발생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서부사하라에 발을 디딘 것은 91년9월. 88년8월 '유엔 주도아래 주민투표 실시' 라는 평화안에 양측이 합의하면서 휴전감시와 주민투표 관장을 임무로 한 '서부사하라 주민투표 실시를 위한 유엔특임단 (MINURSO)' 이 안보리 결의 6백58호에 의거해 창설됐다.

MINURSO본부가 자리잡고 있는 서부사하라의 거점도시 라윤. 한창 건설중인 주택단지와 각종 시설물, 곳곳에 붙어 있는 국왕의 초상화에서 모로코정부의 점령 영구화 의지가 엿보인다.

당초 유엔은 투표를 통해 모로코와의 통합이나 독립중 한가지를 주민들 스스로 선택토록 하는 작업이 10개월 정도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투표권자 식별작업이 양측간 이견으로 벽에 부닥치면서 애초 1년으로 예정됐던 MINURSO의 임기가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지난 74년 스페인이 마지막으로 실시했던 인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폴리사리오측 주장에 대해 모로코는 현재 서부사하라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연고가 있는 경우 투표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양측의 주장이 팽행선을 달리면서 유엔은 96년5월 약 6만명에 대한 투표권 확인을 마친 상태에서 두손을 들었다.

이에 따라 유엔이 파견한 '블루베레' 의 역할은 임무개시 7년째가 되도록 휴전감시라는 1단계 임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라윤에서 남쪽으로 3백㎞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움드레가 유엔군 팀 사이트. 에티오피아출신 대령이 팀 리더를 맡고 있다.

그 아래 러시아.미국.말레이시아.파키스탄.프랑스.중국등 각국 장교들이 지뢰가 묻힌 모래방벽 주위를 차량으로 순찰하며 휴전감시 활동을 펴고 있다.

공용어는 영어지만 각국 언어가 난무한다.

각자 제나라 군복을 착용하고 있어 복장도 뒤죽박죽이다.

하늘색 베레모와 머플러, 오른쪽 어깨에 부착한 유엔마크가 유일하게 통일성을 부여할 뿐이다.

형편이 어려운 나라에서 온 블루베레들에게 하루평균 60달러의 PKO수당이 적잖은 위안이지만 대부분의 평화유지군들에게는 2~3개월에 한번씩 돌아오는 휴가가 유일한 즐거움이다.

라윤 (서부사하라)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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