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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3·1 만세는 주변지의 세계화 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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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의 체결 장면을 그린 그림.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자신의 전후 구상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민족자결주의’는 3·1운동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다. 하지만 윌슨 자신은 정치적으로 ‘조선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다.

3·1운동 9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세계사적 시야에서 재조명하는 학계 움직임이 활발하다.

9일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이 주최하는 ‘1919년의 세계사적 의의’ 국제학술강연회에선 한국·중국·일본과 미국의 학자들이 나서 3·1운동의 역사적 지평을 넓힌다.

3·1운동은 돌발적이고 고립된 지역적 사건이 아니라, 당시 긴박하게 돌아가는 세계 정세에 한민족이 능동적으로 개입해 들어간 세계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날 강연에 나서는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은 “1919년의 민족자결운동은 당시 세계정치 주변지역에서 일어난 세계화 운동”이며 “이런 세계사적 조류에 한반도가 참여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희곤 안동 독립운동기념관장은 “현재 한국에서 발행된 세계사 교과서조차 3·1운동을 내세우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제1차 세계대전 뒤 식민지 해방운동의 선두에 선 3·1운동에 대한 세계사적 평가가 정작 국내에서 홀대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대의 토머스 녹 교수는 ‘미국 국제주의의 아버지’ 우드로 윌슨의 사상을 소개한다. 윌슨은 전후 세계체제를 구상하며 자유무역과 민주주의의 확산, 그리고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 윌슨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파리평화회의에 큰 기대를 걸었던 이유다.

개인적으로 윌슨은 이승만과 친분도 있었다. 윌슨이 프린스턴대 총장 시절 이승만은 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녹 교수는 "윌슨이 이승만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하고, 이승만의 노래에 맞춰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윌슨은 “나는 앞으로 100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자부한 바 있으며, 그의 진의야 어쨌든, 3·1운동은 100년 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기초가 됐다.

마쓰오 다카요시 교토대 명예교수는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와 3·1운동의 관계를 논한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란 1905년부터 32년 사이에 전개된 민주주의·자유주의적 정치·사상·문화 운동이다. 마쓰오 교수는 3·1운동이 벌어진 날, 일본 도쿄에서도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1만여 명의 대규모 민중 시위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 그는 “1918년 여름엔 쌀값 인하를 요구하는 ‘쌀 소동’이 일본 전역을 휩쓸어 데라우치 마사타케 내각이 타도됐다”고 지적한다. 조선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가 실각하자, 조선에서도 ‘권력의 뜻밖의 취약성’을 깨닫고 민중운동의 힘을 자각하게 됐을 거란 주장이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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