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구 실용화 바람…밀라노 박람회서 나타난 경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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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디자인은 없고 오직 서비스만 있다. "

최근 유럽가구시장에서 실용화를 최우선으로 삼는 디자인들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경향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세계 유명 가구디자이너들이 유럽가구시장에 선보이는 제품이 종전 화려하고 혁신적인 디자인 중심에서 차분하고 침착하면서도 실용성을 강조하는 풍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이같은 현상은 한 시즌을 앞서가며 세계 최고의 고품격가구전으로 인정받는 올해 밀라노가구 박람회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지난 4월 열린 이번 밀라노박람회에서 세계 주요 가구회사들은 일제히 60~70년대 기하학적 모더니즘을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가구 대신 단순하면서도 차분한 미국인 취향의 가구들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최근 2년동안 유럽의 가구판매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반면 미국에서의 유럽가구판매는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 실례로 이번 밀라노박람회에 출품된 안토니오 시테리오 (이탈리아) 의 'B&B이탈리아' 란 작품과 그 유사 디자인 가구들은 현재 미국 전역의 각 가구점에서 전례없는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이 가구의 특징이 바로 유럽에서 디자인 됐지만 화려함보다는 미국적인 실용성이 강조된 것. 프랑스 인테리어잡지 '메종 마리 끌레르' 의 실장 다니엘 로첸츠트로치씨는 이번 전시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언급하면서 "이번 전시품중 큰 인기를 끈 시테리오의 작품은 마치 미국의 의상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이 디자인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 라고 말했다.

가구전문가들은 유럽에서 일고 있는 미국식 디자인 돌풍에 대해 "미니멀리즘 경향을 유럽 가구디자인의 형식에 도입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소화한 것이 미국인의 구미에 맞아 떨어지고 있다" 고 해석하기도 한다.

실용화 경향외에 아직도 창조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분야는 하이테크 플라스틱소재등 신소재를 이용해 만든 가구제품들. 대표적인 사례로 네덜란드의 가구디자이너 마르셀 반데르스가 소개한 '매듭이 있는 의자' 와 영국의 가구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의 파격적인 작품 '드라이어드' 등이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유럽의 주목받는 가구디자이너로 부상하고 있는 파리의 오준식 (吳俊植) 씨는 "기업은 소박한 미와 수준높은 생산방식의 연구를 통해 운송비와 생산비를 낮춰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본다는 전략인데다 소비자들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거움을 선택한다는 정서가 맞아 떨어져 실용성이 강조되는 가구들이 최근 각종 가구 박람회에서도 주류를 이룬 것" 이라며 "이런 현상으로 세계가구시장에서 지명도를 가진 몇몇 디자이너들의 신제품이 무대 앞을 메운 반면 신인 디자이너들의 출현은 거의 없었다" 고 들려줬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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