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총비서 오를 김정일…의미와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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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정일 (金正日) 이 머지 않아 북한의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자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날 평남도당을 내세워 김정일을 당총비서에 추대키로 했다고 공식선언했기 때문이다.

94년 7월8일 김일성 (金日成) 사망후 온갖 억측이 나돌던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3년2개월여가 흐른 22일 처음으로 가시화한 것이다.

북한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대관식 (戴冠式)' 을 거행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향후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김정일의 총비서 추대결정의 의미및 북한의 장래를 점검해본다.

북한이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위한 본격적 수순밟기를 시작했다.

벌써부터 예고됐던 '김정일 시대' 가 임박한 것이다.

김정일은 북한정권의 모든 권력의 원천이자 중핵 (中核) 인 노동당의 최고지위에 올라 대내외적으로도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군림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일성이 사망한지 3년 넘도록 과도적 통치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김정일은 최고지도자로서 군림해 왔지만 군최고사령관.국방위원장의 직함으로 행세했을 뿐이다.

공식행사 보도가 군부대 방문에 집중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사망한 김일성 명의의 신임장을 상대국이 거부하는등의 해프닝도 과도체제에서 비롯한 것이다.

김정일의 공직승계는 북한이 50년에 걸친 김일성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지도체제를 갖춘다는데 의미가 있다.

김정일은 부자 (父子) 세습이란 치명적 한계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나름대로의 통치 청사진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유훈 (遺訓) 통치의 그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기를 희망하고 있을 것이고, 또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대대적인 김정일 부각 움직임과 김일성을 역사속의 인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움직임도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주체연호 (主體年號) 는 대표적인 사례다.

김정일정권의 출범은 또한 기로에 선 북한체제의 향후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 3년간 정치.경제.외교등 국정 전반의 파탄상황을 맞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자면 강력한 지도력과 함께 가위 혁명적이라 할 전환이 요구된다.

김정일은 자신이 해결해야 할 책무로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어차피 김정일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북한의 권력상황에서 30년 가까이 후계자수업을 받아온 그의 대관식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정치적으로 새 지도체제 구축을 위한 조직개편과 인선도 서둘러야 한다.

또 김일성의 이른바 유훈통치 노선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새 통치이데올로기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정책도 제시해야 한다.

김정일은 21일 시작된 평남도당 대표회의를 기점으로 고조될 추대분위기를 봐가며 당.정.군의 조직및 인사정비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당정치국 상무위원회나 인민무력부장등 그동안 비워뒀던 자리도 충원해야 한다.

북한이 전격적인 승계발표보다 단계적인 추대행사를 통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권력승계에 대한 여론의 동향을 읽으려는 듯하다.

부자세습과 식량난등으로 인해 혹시나 터져나올지 모를 '거부감' 을 잠재우는 일종의 세 (勢) 몰이를 하는 동시에 축제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 것이다.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 움직임이 가시화했지만 정확한 시기를 점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창건 52주년인 10월10일이 유력하지만 시기상으로 지나치게 촉박하다는 관측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전문가들은 승계시기를 특정기념일등과 연계해 논하는 것보다는 북한의 관점이나 입장에서 동향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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