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살 깊은 '老村'] 上. "자식들은 오라지만 정든 고향땅 못 버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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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고흥 예동마을의 송대순 할머니가 들일을 마치고 작은 삽을 지팡이 삼아 집으로 향하고 있다. [고흥=양광삼 기자]

"소원이 뭐 있겄소. 자식들하고 같이 사는 것이 젤 큰 소원이제."

지난 17일 전남 고흥군 두원면 관덕리 예동마을. 송대순(82)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속내를 털어 놨다. 이날은 모처럼 비가 내려 송 할머니를 비롯한 5명이 '젊은 동생' 최종순(67)할머니 집에 모여 심심풀이 화투를 치고 있었다.

22가구 34명이 사는 예동마을에서 가장 젊은 남자는 이장인 김해근(64)씨며, 여자는 58세가 제일 어리다. 잠시 다니러 온 사람 외에는 학생은 물론이고 코흘리개 어린이도 찾아볼 수 없다. 휴경지를 제외하면 논은 2만여평이 채 안되지만 젊은 사람이 없어 예순이 넘어도 농사에 매달려야 한다. 비 내리는 날이 유일한 공휴일이다.

남편과 20여년 전 사별한 송 할머니는 아들 다섯.딸 둘을 모두 출가시키고 혼자서 농사지으며 산다. 손자.손녀가 17명이어서 자식농사는 누구보다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할머니는 항상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려 있는 느낌을 갖고 있다.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뒤 덩그러니 홀로 집을 지키는 것이 원인일수도 있다. 하지만 7남매 중 어느 누구와도 한 지붕아래 살지 않는 것이 더 안타깝다. 아들은 개인 사업을 하거나 공무원.회사원으로 근무하며 서울.인천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명절 때나 모이지만 만나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간다.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이산가족 같은 삶을 20년 넘게 살았다.

"넘들은 자식들 성공허고 손주 새끼들 많고 부러울 게 뭐 있겄냐고 허는디 속 모르는 소리여. 차라리 못 배운 자식들이 부모 모시고 사는 것 보면 부럽데."

물론 아들.며느리들이 같이 살자고 했다. 그러나 한평생 논.밭에서 살아 온 할머니는 삶의 터전을 등지고 도시의 아파트로 옮겨갈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할머니는 얼마 전 콩밭에서 김을 매고 마을로 올라오다 다리 힘이 없어 가슴을 도로 턱에 찧었다. 다행히 20여㎞ 떨어진 과역면에 사는 친정 조카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 도와준 덕분에 고흥읍내 병원을 일주일 동안 오가며 치료받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보다 귀한(?) 조카'라고 했다.

"(자식들한테) 서운한 생각하면 뭐 하겄소."

송 할머니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즈그들도 벌어 묵고 새끼 키우고 할랑께 바빠서 못오는 것이제 일부러 안올라고 하는 것은 아닐 거요. 보고 싶은 맘은 굴뚝 같은디 나 걱정말고 즈그들이나 잘 살면 그걸로 원(願)이 없소."

150㎝ 남짓한 자그마한 키, 쭈글쭈글한 얼굴과 손. 가난 속에서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의 어머니 모습이다.

고흥=구두훈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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