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강남 - 강북 뒤섞으면 경찰 비리 없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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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찰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어제 서울경찰청은 강남지역 경찰관과 유흥업소 사이의 고질적 유착 관계를 끊기 위해 단행키로 했던 대규모 전보 인사를 연기했다. 강남·서초·수서 등 3개 경찰서의 경위급 이하 경찰관 600여 명을 비(非)강남으로 전출시키라는 지침을 하달한 게 불과 사흘 전이다. 대상자들이 “왜 하위직에만 책임을 전가하느냐”며 거세게 반발하자 “조만간 있을 경찰서장 인사 이후에 실시하겠다”는 군색한 이유를 내세워 물갈이 인사를 미룬 것이다. 경찰 조직이 원칙도 없이 우왕좌왕하고, 영(令)조차 서지 않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셈이다. 일선 경찰관의 비리와 지휘부의 무원칙, 이로 인한 기강 해이가 일선 치안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빚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갈이 방침은 검찰 수사에서 강남서 경찰관들이 안마시술소 업주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성매매를 방조한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 나왔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기강과 물렁한 감찰시스템을 방치한 채 다른 경찰서와의 맞교환 인사에만 의지하는 것은 일회용 이벤트 효과를 노린 조치로 볼 수밖에 없다. 이미 1999년·2003년에도 대규모 물갈이 인사를 했지만 경찰 비리는 끊이지 않고 불거졌다. 근무 환경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관 얼굴만 바꾼다고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극단적으로 말해 경찰관 간의 ‘비리 임무교대’라는 모양새로 비칠 소지마저 있는 것이다.

강남권 경찰서는 대기업과 고급 상가, 유흥가가 밀집한 지역 여건 외에도 강북권 경찰서와 달리 주말 집회, 시위 진압에 동원되는 일이 거의 없어서 인사 때마다 선호도가 높다. 이번 물갈이 방침에도 시국 치안 업무에 시달린 강북지역 경찰을 위로하기 위한 뜻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각 경찰서 간 근무 여건을 지금보다 고르게 만드는 동시에, 철저한 상시 감찰을 통해 한번 비리가 드러나면 가혹할 정도로 일벌백계하는 게 최선이다. 외부감시시스템과 내부자 고발 활성화도 방법이다. 부패를 잡으려면 일회용 이벤트가 아닌 뿌리에서부터 손을 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