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국어교육의 바탕 한자교육 관심갖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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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여러 신문에 대학생들의 한자 (漢字) 능력이 형편없다는 기사가 다루어지면서 한자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학생들의 한자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제라도 언론의 관심 속에 참담한 현실을 자각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국어국문학이나 중문과 (中文科) 출신도 한국어문회 4급 시험에 대부분 60점을 넘지 못한다.

일부 기업에서 의뢰해 시행하는 한자능력평가시험에는 평균 1백50명 정도의 대졸 신입사원들이 시험을 보는데 시험 때마다 2~5명은 본인 이름을 쓰지 못하고 이름을 쓴 사람들도 썼다기보다 그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어떻게든 문제로 주어진 한자를 써보고자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며 온갖 희한한 한자를 창제 (?) 해놓은 시험지와 답안지를 볼 때면 안쓰러울 정도다.

한자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반가운 일인데도 한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얼마전 초등학교 3학년부터의 영어교육이 시작되면서 온 나라가 영어 열풍에 휩싸인 것처럼 한자에도 무분별한 과외열풍이 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자를 배우는 목적은 단순한 문자로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자교육은 모든 학문에 기초가 되는 국어교육의 요체요, 올바른 품성과 겸양의 덕목을 기르는 인성교육에 더 큰 목적이 있다.

일부 교도소나 구치소에서는 한자교육을 통한 인성교육과 교화에 놀라울 정도의 효과를 보고 있다 한다.

재소자 한자교육에 열심인 어느 구치소 과장의 말은 되새겨봄직 하다.

"약 6개월 정도 한자교육을 받고 나면 수감자들의 눈빛이 달라집니다.

체념의 일상에서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의욕을 갖게 됩니다.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한자를 섞어 써서 보내면 가족들은 누군가 대필해 주었다고 생각하다가 면회와서 본인이 직접 쓴 편지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놀랍고 대견해합니다."

지난 5월의 제9회 한자능력검정시험에 단체 응시한 어느 구치소 재소자들은 4급 시험에 2백43명이 응시해 2백40명이 합격했다.

한자를 꽤 공부했다는 이도 합격하기 어려운 1, 2급 시험에도 사회 일반인보다 재소자들의 합격률이 훨씬 높다.

대개의 학부모나 학생들은 단기간에 높은 급수에 합격하는 것을 바라지만 이는 정도 (正道) 라 할 수 없다.

초등학생이라면 아직 한자를 공부할 시간은 많다.

속성이니, 비법이니 하는 말들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가 잘못된 풍조에 만연된 것도 바로 어려서부터 참고 견디면서 끈기있게 정도를 걷는 방법을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자 교육은 욕심내면 안된다.

차근차근 기초부터 공부하게 하고 어머니 아버지가 함께 공부해 준다며 어렵다는 막연한 선입관을 가졌던 한자학습이 훨씬 재미있게 될 것이다.

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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