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 추석을 위한 화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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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국민들의 의욕상실과 불안심리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들이다.

물론 그 일차적 원인은 경제난에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낙담하고 불안해하는 더 근본적인 요인은 경기불황 그 자체보다도 현 정부로서는 도저히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고 보는데서 비롯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면 내년 2월까지만 세월이 약이다 하며 참고 기다린다면 희망이 있을 것인가.

국민들의 절망감은 현재는 물론 장래도 현재의 정치판이 돌아가는 것을 보아서는 싹수가 노랗다고 느끼는데 뿌리를 두고 있다.

보통 이런 불경기에는 자기 자신 걱정부터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요즘엔 제 문제는 둘째고 저마다 나라걱정부터 하고 있다.

한 신문은 그것을 '나라걱정 증후군' '한탄증후군' 이라고 표현했다.

곧 추석연휴고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칫 이런 불안심리와 절망감이 확산되고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만의 하나라도 사회분위기가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은 애써 낙관과 희망을 가꿔나가야 한다.

개탄하자면 한이 없다.

앞날에 희망을 갖고 기대를 하자면 못 그럴 것도 없다.

우선 우리들이 그토록 개탄하고 질타해 마지않는 정치권을 놓고 생각해 보자. 누가 집권을 하든간에 정치와 국정이 지금보다야 못하겠는가 하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견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장래에 대해 그토록 비관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한 사람씩 놓고 따져보자. 가령 신한국당 이회창 (李會昌)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지금 아들의 병역문제로 인해 그의 상표였던 '도덕성' 을 거의 상실한 상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개성이나 그가 이제까지 걸어온 길에 비추어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와 국정운영을 해나갈 것임은 믿어도 좋을 것이다.

'남에게는 법대로' '자기에게는 멋대로' 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야당의 공세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는 큰 진보요 희망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실로 요구되는 정치적 덕목이 바로 법과 원칙의 존중일 것이다.

그러면 김대중 (金大中) 후보가 집권을 하는 것은 어떤 의의가 있을 것인가.

金후보가 강조하고 있는대로 우리 정치사상 처음으로 정치권력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사고 싶은 귀중한 경험이다.

아울러 金후보의 집권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숙제의 하나인 지역감정및 지역차별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남북문제의 갈등도 지금보다는 훨씬 완화되지 않을까. 다음으로 조순 (趙淳) 후보가 당선된다면 또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뭐니해도 지금 가장 큰 국가적 현안은 경제난의 해결이다.

국정을 대통령 혼자서 꾸려나가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래도 경제에 관해 무얼 좀 아는 사람이라야 해결책 마련도 한결 쉽고 방향도 잘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조순씨 이상 가는 후보가 있는가.

또한 그의 서울시 행정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는 있지만 복마전으로 이름높은 서울시를 맡아 오면서 그가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은 점만은 평가할만한 대목이다.

칼국수를 먹는 시범을 안보여도 청렴은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출마여부를 아직은 점칠 수 없지만 마지막으로 이인제 (李仁齊) 후보를 놓고 생각해보자. 어떤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역시 세대교체가 가져다주는 신선감과 활력을 맨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세대를 생물학적 연령만으로 구분하는 건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연령의 차이가 가져다주는 변화와 활기를 무시하는 것 역시 옳은 판단은 아니다.

이인제씨가 집권을 한다면, 그가 세력결집을 위해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르든 늦든 정치권의 물갈이는 필연적인 것이며 이는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욕구와 맞아떨어질 것이다.

누가 돼도 희망이 있다는 식의 진단은 물론 무책임한 것이다.

그런 식의 주장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추석의 화두 (話頭) 로 삼아 좌절과 불안감을 극복해 나가자는 것이다.

유승삼 <중앙 m&b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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