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건수 올리기 뒷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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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재 사회부 기자

'불량 만두'파동이 급속히 확산되던 지난 9일, 경찰은 한달간 '식품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유독.유해 물질이나 쓰레기.사료용 재료 등을 이용해 먹거리를 제조 또는 판매하는 행위 등을 집중 단속해 뿌리를 뽑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경찰서마다 전담반을 편성하고 단속에 특진까지 내걸었다.

그리고 경찰은 18일 첫 단속 결과를 발표했다. 단속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588건을 적발하고 633명을 검거했다는 것이었다.

경찰 내부에선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일궜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민은 이 같은 엄청난 '전과(戰果)'에 어리둥절한 표정들이다. 그 많은 불량 식품을 먹는 동안 경찰 등 식품 위생 문제를 책임진 기관들은 도대체 뭘 했는지 국민은 궁금할 따름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 관계자 말을 들어보면 그 배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는 "갑자기 위에서 지시가 떨어져 수사를 시작했을 뿐이다. 말이 식품 위생 사범이지, 우리 경찰서에선 비위생적으로 안주 등을 만든 포장마차 주인 2명을 잡은 게 전부"라고 실토했다.

단속 건수를 올리기 위해 벌인 몰아치기식 수사의 전형이라는 뜻이다. 조직적이고 규모가 큰 불량 식품 제조업자 수사는 뒷전이고 일부 영세상인이 '실적' 때문에 걸려든 셈이다. 불량 만두 파동에 이은 '뒷북 단속'덕택에 우리 식탁에 불량 식품이 더 이상 오르지 않게 된 것에 국민은 위안을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팔짱을 끼고 불량 식품을 방치하는 것보다 일회성이라도 단속을 벌이는 게 낫다.

그러나 경찰이 '불량 식품을 뿌리 뽑겠다'는 당초의 의지를 관철하려면 꾸준한 단속이 필요하다.

또 엄하게 법을 적용함으로써 부정 식품을 만든 업자들이 다시는 발 붙이지 못하도록 사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먹거리로 장난치면 크게 다친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는 단속이 돼야 한다.

이철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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