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가 딸기를 파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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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브로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에 한국밸류자산운용 자산운용부 방원석 차장은 이렇게 근황을 소개했다. 지난달 초 친환경 농산물 생산업체에서 딸기를 납품받아 증권사·운용사 등에서 일하는 지인들에게 140만여원어치 팔았단다. 알이 굵고 튼실하다고 반응이 좋아 지난달 말엔 추가 주문까지 받았다고 했다.

아무리 시장 상황이 안 좋기로서니 고액 연봉으로 소문난 펀드매니저가 ‘투 잡’을 뛸까 싶었다. 그렇게 팔아서 얼마나 남기느냐고 물었더니 한 푼도 안 남는단다. 대형 마트 납품가에 딸기를 받아와 그 값에 그대로 팔았단다. 자선사업 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꿍꿍이가 있을 법했다.

사정은 이랬다. 그 딸기를 납품한 곳은 한국밸류자산운용이 지분을 사들인 기업이다. 딸기를 먹고 마음에 들면 사람들이 “이 딸기는 어디서 산 거냐”고 물을 테고, 그러면 방 차장은 “○○이 생산한 겁니다”고 답한다. 그럼 “○○은 뭐 하는 회사냐”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테고 그는 이어 그 기업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 돈은 얼마나 잘 버는지, 성장 가능성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 쭉 풀어 놓는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라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제값을 못 받으니 매니저가 직접 나서 홍보하겠다는 의도다. 그는 “봄이 오면 황사가 심해질 테니 그때는 ⅹⅹ가 만든 공기청정기를 팔겠다”고 말했다. ⅹⅹ 역시 그가 운용하는 펀드가 투자한 회사다. 이쯤 되면 투자자가 아니라 회사의 주인이나 다를 바 없다.

‘성장주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피셔는 1956년 사들인 모토로라 주식을 2000년이 돼서야 처분했다. 그 사이 주가는 42달러에서 1만 달러로 뛰었다.

그가 모토로라 같은 기업을 발굴한 비법은 철저한 조사다. 장부 수치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다. 고객과 납품회사, 경쟁사 임직원까지 만나 정보를 캐낸다. 퇴직한 임직원을 찾아가 회사에 대한 평가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얻은 별칭이 ‘증권업계의 형사 콜롬보’ ‘명탐정 셜록 홈스’다. 경영진을 만날 때는 빼곡한 질문지를 준비, 회사의 비전을 체크한다. 모토로라도 그런 경우였다. 월가에서는 창업자의 아들이 모토로라를 경영하는 것을 놓고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피셔는 창업자인 폴 갤빈과 그의 아들이며 사장인 밥 갤빈을 만나 대화한 끝에 투자를 결정했다.

그렇다고 조사를 마친 기업에 모두 투자하는 것도 아니다. 40~50개당 한 개 기업에만 투자한다. 주식을 사는 데 할애하는 시간이 엄청나다. 피셔는 이에 대해 “1만 달러를 투자해 10년 뒤 적게는 4만 달러, 많게는 15만 달러로 불리려 한다면 그에 걸맞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나”고 되묻는다. 피셔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20여 년이다.

‘세계 제일의 부자’ 워런 버핏의 투자 철칙 중 하나는 주식을 살 때 기업을 사는 마음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주식을 산다면 ‘한방’을 노린 ‘묻지마’ 투자는 할 수 없다. 빚은 쌓여 있고, 벌어들이는 돈은 신통치 않은 데다 벌이는 사업은 허황된 회사를 누가 사겠는가. 

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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