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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세수부족 고민…숨은 稅源 찾기,주머니 짜기도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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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국세청이 세수 (稅收) 부족으로 고민에 빠져있다.

모자라는 세수를 채우자면 납세자의 주머니를 더 짜내야 한다.

그러나 불황에다 잇딴 대기업부도 사태로 이중삼중의 부담을 안고 있는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형편을 보면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불황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업종이나 경제난을 빌미로 세금을 적게 내려는 사업자등 '숨은 세원 (稅源)' 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예전처럼 납세자를 윽박지르는 방법도 이제는 잘 안먹힌다.

더욱이 내년에는 올해 보다 세수여건이 더 안좋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선거를 겨냥, 예산의 씀씀이를 더 늘리라는 주문만 늘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예산이 늘어나면 결국 국민들이, 내는 줄도 모르고 부담하는 간접세 비중을 높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 세수 부족 어느 정도인가 = 지난 6월말 현재 용도가 따로 정해져있는 세금인 교통세.교육세.농특세와 관세등 특별회계를 제외한 내국세 수입 (일반회계) 은 29조4천7백81억원. 올해 걷기로 한 목표의 46%를 달성하는데 그쳤다.

예년 같으면 상반기에 한해 목표 세수의 절반이 걷히는게 보통이지만 올해는 3~4%포인트나 미달한 것. 상반기 내국세 징수실적 증가율을 봐도 올해 세수부족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짐작할수 있다.

매년 상반기 내국세 징수실적은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수치 정도가 늘었다.

올해의 경우 경제성장률을 6%, 물가상승률을 4%로만 봐도 전년에 비해 10%정도는 세수가 늘어야 정상이란 얘기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내국세 징수실적은 4.2%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에 반해 정부의 올해 일반회계 세출예산 증가율은 12.4%에 달한다.

정부지출을 모두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출 증가율을 맞추자면 올 하반기에 세수 증가율이 적어도 10%는 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정부는 82년이후 15년만에 처음으로 당초 정부예산을 3조5천억원이나 줄이는 '감액추경' 을 편성할 예정이다.

올해 세수가 이처럼 부진한 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불황 때문이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소득세와 법인세 징수 실적이 1년 전보다 감소하고 증권거래세가 작년 같은 기간 보다 무려 24.8%, 주세는 31.7%나 덜 걷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나마 '효자노릇' 을 한게 부가가치세인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5%나 늘었다.

그러나 부가세 징수실적이 좋았던 것은 장사가 잘돼서라기보다는 수출이나 설비투자가 급격히 둔화돼 부가세 환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년이다.

무엇보다 내국세 수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소득세와 법인세가 올해보다 훨씬 덜 걷힐 수 밖에 없다.

내년에 낼 소득세와 법인세는 올해 소득에 붙는 세금인데 올해 경기가 지난해 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미뤄놨던 수출이나 설비투자가 내년부터 경기회복과 함께 늘어나기 시작하면 부가세 수입 증가율도 둔화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내년 세수 증가율은 세율을 올리지 않는한 3%선을 넘지 못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는 이에따라 내년 예산 증가율을 5~6%로 묶으려 했으나 여당의 반대로 결국 6.5%선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내년초 등유교통세를 30%, 교육세를 10% 각각 올리기로 했다.

◇ 국세청의 고민 = 전국의 지방국세청장들이 본청의 눈치를 가장 살필 때가 매년 세수목표를 지방청별로 배정하는 연초다.

그런데 올해는 또한차례 '눈치작전' 이 남아있다.

정부가 올해 3조5천억원의 감액추경을 편성키로 했기 때문이다.

예산을 줄이면 이에 따라 세수목표도 재조정하게 되는데 어떻게든 자기 지방청의 세수목표가 더 줄도록 청장들이 본청을 상대로 '로비' 에 나서고 있는 것. 특히 대기업 본사나 큰 공장등이 있는 '알짜배기' 세무서가 많은 지방청일수록 사정이 급하다.

이런 지역의 경우 경기가 좋을 때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세금이 목표이상 걷히지만 불황 때는 세수가 급격히 떨어지는등 경기 바람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강남지역의 한 세무서장은 "대기업 부도의 여파가 시간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며 "세수는 부족한데 납기연장이나 징수유예신청은 점점 더 쌓이기만 해 걱정" 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예년의 경우 소득세나 법인세 징수실적이 두자리수로 늘어온게 보통인데 올해는 한자리수로 뚝 떨어졌다" 며 "이런 추세라면 올해 세수 증가율이 한자리수를 넘기는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세무조사를 강화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무리한 세무조사로 '물의' 를 일으킬 처지가 못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사가 안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기업이나 사업자들의 형편을 뻔히 알면서 세금 더 내라고 다그치기도 힘들다.

일선 세무서 부가세과의 한 직원은 "요즘은 관내 업소주변만 돌아다녀도 업주들이 세무조사를 나온줄 알고 긴장한다" 며 "밖에 나가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고 말했다.

이직원은 "세무조사는 고사하고 요즘은 체납자들에게 세금 빨리 내달라고 사정해야할 지경" 이라고 덧붙였다.

국세청은 이에 따라 지난달 25일 열린 전국 지방국세청장회의에서 평소 세금을 잘내온 납세자에 대해서는 가급적 세무간섭을 하지 않고 새로운 호황업종이나 음성.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는 철저하게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우선 호황을 누리고 있는 신종 사업이나 외형을 속이고 세금감면을 받고 있는 사업자등에 대한 실태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병원이나 법률회사등이 고용 의사.변호사등의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여부도 꼼꼼하게 따지고 신용카드 변칙거래나 유흥주점의 특별소비세 탈세행위등에 대해서도 집중조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선 세무서에서는 이런 식의 응급처방으로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강북지역의 한 세무서장은 "음성.불로 소득에 대한 과세를 아무리 강화해봐야 전체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며 "최근의 세수부족은 조세행정을 강화해서 채울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고 말했다.

그는 "올해 보다는 내년이 더 걱정" 이라며 "정치권 압력으로 내년 정부예산이 10%안팎으로 늘어난다면 세율을 올리지 않는한 세무행정력만으로 세수를 채우지는 못할것" 이라고 강조했다.

◇ 업계와 전문가의 대안 = 조세연구원 성명재박사는 "현행 세제는 과세특례자같은 조세감면 대상은 많으면서 일반 과세자에 대한 세율은 높아 외형을 속이지 않을 수 없도록 돼있다" 며 "이 때문에 세무당국으로서도 매년 일정비율이상 무조건 세금신고를 높이도록 세무간섭을 할 수 밖에 없다" 고 지적했다.

성박사는 세무행정이 경기변동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율을 낮추는 대신 조세감면폭은 대폭 줄이는 세제 개편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현행 세무행정은 호황일 때 세금을 대충 걷고 불황일 때는 바짝 조여 경기 변화에 역행하고 있다" 며 "정부가 세입 범위내 세출이란 원칙에 얽매이지 말고 불황일 때는 국채를 발행하는등의 방법으로 세수를 메우고 호황일 때 세금을 더 걷어 국채를 갚는 식으로 예산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고 밝혔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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