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유대인 對 유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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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예루살렘에 또 폭탄테러.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 중동평화다.

아랍은 이스라엘에 평화를 보장하고 이스라엘은 아랍에 영토 일부를 돌려주는 평화협정에 서명해도 아랍자살특공대의 폭탄 한발과 과격한 정통파 유대교인의 총기난사 한번으로 그 협정은 있으나마나가 돼 버린다.

실내에 가스가 새어 무릎높이까지 가득 차 있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거기 불씨 하나만 떨어지면 폭발하게 돼 있다.

이스라엘 전역, 특히 요단강 서안 (西岸) 은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증오가 무릎높이가 아니라 턱 아래까지 차 오른 '원한의 바다' 같다.

성냥불 하나만 그어 대면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아랍인과 유대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네 차례의 전쟁을 통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도 평화공존하는 관용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아랍.이스라엘간 대결 못지않게 심각한 이스라엘 내부의 유대인 대 유대인의 갈등이 평화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94년 헤브론에서 한 이스라엘 청년이 쇼핑중인 아랍인 29명을 무차별 사살했다.

그의 '영웅적인 행동' 을 흠모하던 이갈 아미르는 이듬해 이츠하크 라빈 총리를 암살했다.

97년 설날에는 또 다른 젊은이가 붐비는 시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아랍인 7명을 부상케 했다.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과격한 정통파 유대교도들이다.

폭력으로 이스라엘땅을 지키는 것이 유대교의 율법상으로도 정당하다고 맹신하는 집단최면에 걸린 세력에 속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국토는 구석구석이 조상 전래 (傳來) 의 유대인의 땅이라고 믿고 아랍인들의 생명을 담보로 이스라엘정부의 정책에 항거한다.

5백60만 이스라엘 인구는 잡다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세계 각지에서 이스라엘로 모여 든 사람들이다.

사회통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크게 아슈케나지와 셰파르디의 둘로 나뉜다.

전자는 독일을 중심으로 중부및 동부유럽 출신들이고 후자는 이베리아반도및 아랍지역 출신들이다.

좀 단순화해 말하면 시오니즘운동과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한 아슈케나지는 이스라엘사회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전통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하는 반면 셰파르디는 각종 요직에서 소외됐다고 생각하면서 리쿠드당 지지로 마음속의 불만을 발산한다.

아슈케나지와 셰파르디는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경쟁한다.

그러나 그들간의 대립은 평화를 직접 위협하는 사태까지는 아직 가지 않았다.

아랍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고 평화협상을 방해하는 세력은 극단적인 정통파 유대교도들이다.

그들은 세속적인 것에 반대하고, 텔아비브가 상징하는 물질적 풍요에 거부감을 갖는다.

민주주의의 원리를 존중하지 않고 권위는 유대교의 율법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노동당정부의 라빈 총리가 오슬로합의를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은 93년 당시만 해도 세속적인 텔아비브와 정교 (政敎) 일치의 예루살렘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96년의 총선거에서 리쿠드당의 네타냐후는 극우 정통파 유대교 세력의 지지로 집권했다.

그것은 큰 정치적 채무다.

그런 배경에서 네타냐후는 예루살렘의 아랍인 거주지역에 유대인 정착촌건설을 강행하고 아랍인들의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팔레스타인자치기구에 제공하는 지원금을 동결했다.

그리고 요단강 서안으로부터 이스라엘군대의 추가철수를 중단해 중동평화는 악순환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아랍 대 아랍의 갈등도 심각하다.

그러나 평화협상은 항상 강자의 논리에 끌려가는 법. 강자는 이스라엘이다.

한반도와 나란히 세계평화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아랍 대 이스라엘 분쟁의 해결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유대인 대 유대인 대결의 해소에 좌우된다.

이스라엘정부의 운신 폭이 지금처럼 좁고, 과격한 우익세력에 발목이 잡혀 있는 한 평화협정은 제 구실을 할 수가 없다.

김영희,예루살렘에서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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