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소프라노 갈리나 고르차코바 독창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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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자신감 넘치는 걸음과 우아한 매너로 무대에 등장한 프리마돈나. 그녀는 청중의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남긴채 총총 우리 곁을 떠나갔다.

카탈리니의 오페라 '라 왈리' 중 아리아 '난 멀리 떠나야 해' 를 작별인사로 남긴채. 러시아 가곡과 아리아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민 소프라노 갈리나 고르차코바 독창회 (2일 서울 리틀엔젤스 예술회관) 는 차세대를 이끌고 갈 성악가 중 한명으로 우뚝 선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키로프 오페라의 주역가수로 발탁돼 세계 오페라무대에서 활약중인 그녀의 음악적 재능은 리사이틀 무대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전반부에서는 가끔씩 중저음에서 불안한 음정이 노출됐고 고음 (高音) 이 다소 거칠게 처리되면서 섬세함이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넓은 음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유연함에다 공연장을 진동하고도 남음이 있는 발성은 경이 (驚異) 로움 그 자체였다.

고르차코바가 청중을 전율시킨 것은 메가톤급 발성 때문만은 아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나이팅게일과 장미' , 발라키레프의 '스페인의 노래' 등에서 이국풍의 뉘앙스를 잘 살려냈고 두터우면서도 색채감과 윤기를 잃지 않았던 풍만한 선율의 처리는 가위 일품이었다.

화려하지만 얄팍한 콜로라투라의 말초적인 기교에 넋을 자주 잃었던, 그래서 콜로라투라가 소프라노의 전부인양 착각했던 청중에게 스핀토 소프라노의 매력을 선사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예프게니 오네긴' 중 여주인공 타탸나의 편지장면은 풍부한 음악성과 표현력 면에서 압권이었다.

고르차코바는 프로그램에 예정돼있던 유일한 이탈리아 레퍼토리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대신 차이코프스키의 '이른 봄에' 를 불러 청중이 즐겨듣는 이탈리아의 벨칸토 아리아는 다음 공연으로 미루는 듯했다.

러시아 레퍼토리 일색이어서 다소 지루한 감을 주긴 했지만 상업적 인기에 연연해 하지 않고 예술성을 추구하겠다는 학구적 자세는 높이 살만했다.

전체적으로 뒤로 갈수록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피날레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래밍도 적중했다.

러시아 가곡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언어의 장벽 못지 않게 이탈리아.독일.프랑스 가곡 위주로 흐르는 음악교육과 연주.방송 때문이 아닐까. 고르차코바의 호흡을 놓치지 않으면서 반주를 2중주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피아니스트 라리사 게르기예바의 기여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소프라노 갈리나 고르차코바 내한독창회는 부산공연으로 막을 내린다 (5일 오후7시30분 부산문화회관 대강당) .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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