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기생 만세운동’ 다큐멘터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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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919년 3월 29일. 역사적인 3·1운동이 벌어지고 난 뒤 28일이 지났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독립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시기다. 이날 낮 경기도 수원군(당시) 수원면 자혜의원(현재의 화성행궁 자리)으로 보건 검사를 받으러 가던 김향화씨를 비롯한 수원 기생 33명이 병원 앞에 멈춰 섰다. 병원 맞은편 경찰서 정문엔 일제 경찰이 눈을 부릅뜨고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김향화씨 등 기생 33명이 1919년 3월 29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뒤 끌려간 수원경찰서의 전경. 김씨 등은 경찰서 맞은편 자혜의원으로 보건 검사를 받으러 가다 만세운동에 나섰으며 상인·주민들도 가세하게 됐다. [경기도 제공]


기생들은 이 같은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대한독립 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치기 시작했다. 만세를 부르던 기생들은 몇 분 만에 출동한 경찰에 끌려갔다. 적게는 15세, 많아야 23세에 불과한 앳된 여성들이 만세를 부르다 무자비하게 잡혀가는 모습을 본 주변의 시장 상인과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상인과 주민들은 어둠을 틈타 거리로 몰려 나와 만세를 부르고 일본인 상점과 주택을 찾아가 돌을 던졌다. 경찰에 붙잡힌 김향화씨는 일제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수원 기생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지난해 11월 경기도가 학술 지원한 ‘수원지역 여성과 3·1운동’ 심포지엄에서 당시 신문 기사와 서대문형무소 수감 기록 및 ‘조선미인보감’ 같은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경기도가 3·1절 90주년을 맞아 ‘만세 부른 수원 기생들’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도는 수원방송을 통해 이 다큐멘터리를 1일부터 9일까지 방송한다. 다큐멘터리는 수원 기생들이 만세운동을 하다 경찰에 끌려가는 과정을 자료와 고증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또 이들의 만세운동이 수원과 주변 지역의 만세운동에 영향을 끼친 사실을 조명하고 있다.

수원박물관 이동근(39) 전문위원은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기생들이 조직적으로 민족적 일제 항거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평가받게 됐다” 고 말했다.

수원=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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