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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현란한 LED 마술로 빚은 ‘꿈의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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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그건 마술이었다.

에피 역으로 더블 캐스팅된 홍지민과 차지연은 각기 다른 색깔로 자신의 가창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디나 역의 정선아, 제임스 역의 최민철에게도 박수가 쏟아졌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세트는 없었다. 삭막한 철판 비슷하게 생긴 다섯 개의 판만이 무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면 다섯 개의 판은 자유자재였다. 상하좌우 움직임은 물론 360도 회전도 가능했다. 쏘아지는 빛에 따라 화려한 네온사인의 뉴욕 밤거리가 되는가 싶더니,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 등으로 마구 변했다. 전 세계에서 처음 선보이는, 업그레이드된 뮤지컬 ‘드림걸즈’는 바로 ‘꿈의 무대’였다.

#최첨단 무대 미학의 정수

지난달 27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식 개막한 뮤지컬 ‘드림걸즈’의 진짜 주인공은 5개의 LED(발광 다이오드) 판이었다. 하나당 가로 2m, 세로 6m의 판은 각기 따로 움직이면서도 때론 일사불란했다. 심플했지만 다이내믹했고, 단순했지만 화려했다. 위에서 배경막이 내려오거나 스태프가 대도구를 옆에서 밀고 들어오는, 아날로그 무대와의 이별이었다.

4년 전 한국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던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로부터 한 발 더 나간 모양새다. 그땐 수영하는 장면을 하늘로 날아가는 것으로 표현, 평면 무대의 입체화를 꾀했다면 이번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디지털 무대였다. 공연에서 보이는 영상은 모두 117개. 단순히 영상을 투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전에 미리 촬영된 화면과 실제 무대를 긴밀히 밀착시켜 관객은 마치 입체 영화관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압권은 ‘steppin’ to the bad side’. 무대 위와 좌·우 등 3대의 카메라가 현장에서 쏘아 올린 화면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화려한 남성 군무를 다각도에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라스베이거스 쇼 그 이상이었다.

1981년 초연된 작품은 이번엔 한·미 합작 형태로 리바이벌됐다. 자본과 배우는 한국이, 작곡·무대·조명 등 창작진은 미국이 책임지는 식이다. 2009년 현재 미국 뉴욕의 무대 메커니즘이 과연 어떤 지점에 도달했는지, 그들은 한국 무대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정교하게 뿜어냈다. 객석에선 “야-” 하는 탄성이 순간순간 터져나왔다. 한 국내 제작자는 “부러움과 질투를 넘어 좌절감마저 들게 한다”고 토로했다.

#흑인 감성과 여성들의 우정

놀라운 건 무대만이 아니다. 의상은 400여 벌이 쓰였다. 판 뒤로 살짝 숨어 들어간 배우들은 10여 초 만에 화려한 무대 의상으로 깜짝 변신하곤 했다. 그야말로 ‘퀵 체인지’였다. 특히 영화에서 비욘세가 맡았던 ‘디나’는 19벌의 의상과 14개의 가발을 소화해야 한다. 무빙라이트·컬러 스크롤러 등 첨단 조명기기도 총 540여 대가 쓰였다.

60년대 성공 가도를 달리기 위해 분투하는 흑인 여성 트리오의 이야기인 터라 음악과 드라마의 결합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흑인 특유의 끈적한 감성과 탄력 있는 춤솜씨를 따라하기란, 국내 남성 배우들에겐 조금 힘이 부쳐 보였다. 그래도 디나와 에피의 질투와 우정 등 그간 국내 무대에서 보기 힘들었던, 자아를 찾아가는 여성들의 스토리는 반가웠다. 올 하반기 미국 진출이 예정된 작품은, 10만원 티켓값이 전혀 아깝지 않다.

7월 26일까지 샤롯데씨어터, 1588-5212.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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