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美 기대며 중국시장도 잃지 않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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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는 음모론이 힘을 얻는다. 대중이 고통받을 때 ‘위기를 조성한 주범이 따로 있다’는 주장은 눈과 귀를 끌어당기는 마력을 발휘한다.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宋鴻兵·41·사진)은 음모론과 함께 경제위기의 향방을 맞히는 예측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의 지도층도 그의 책을 읽었다는 소문이 나돈다. 금융회사들은 신입 애널리스트들에게 이 책을 필독서로 권하고 있다. 중앙SUNDAY가 지난달 25일 오후 쑹훙빙을 90분 동안 만나 한국 경제와 세계 금융시장에 대한 예측을 들어 봤다. 26~27일 두 차례의 e-메일 인터뷰를 추가했다.

“한국은 하루빨리 미국 경제에서 벗어나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해야 한다. 미국은 지금 침몰하는 거대한 타이타닉호와 같다.”

‘만약 당신이 한국의 정책결정자라면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겠느냐’는 질문에 쑹훙빙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질문의 전제는 ‘한국 정부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은행·기업들이 튼튼해졌는데 원화가치가 전 세계 통화 가운데 가장 많이 폭락했다’는 것이었다. 쑹은 “각국의 화폐가치는 그 나라 경제구조의 표현”이라며 “한국은 외부 시장에 의존하는 구조인데 외부 환경이 좋지 않으니 직접적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미국 대신 중국이 해법일까. 쑹의 답변은 이랬다. “미국이 보는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한국은 중국 속담대로 ‘좌우봉원(左右逢源·좌우 양쪽에서 모두 이익을 취한다는 뜻)’의 전략을 취해야 한다. 미국에 기대면서도 중국 시장을 잃으면 안 된다.”

그는 『화폐전쟁』을 쓸 때 금융위기를 극복한 한국의 저력을 높이 평가했다.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한국의 경제 저력이 ‘훌륭하다(非常不錯)’고 생각하지만 경제위기에 부닥쳐 중국처럼 확실한 구제책을 내놓은 것을 보지 않아 뭐라 평가할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상당히 유보적인 자세다.

쑹훙빙은 자신의 책에서 유대계가 지배하는 국제 금융자본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어떻게 지배하고, 정치 조작을 하고, 금융위기를 조성해 부(富)를 통제하는지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 금융의 역사는 한마디로 끊임없이 세력 다툼을 하고 자본을 불평등하게 배분하는 ‘음모의 역사’다. 다음은 쑹과의 인터뷰 요지.

-한국 원화가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떨어졌다. 일부 학자는 자본·금융시장을 너무 개방해 외국 자본의 영향력에 취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어떤 전략을 택하는 게 바람직하나.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다. 만약 중국이 미국에서 벗어나 스스로 항해할 때 다른 아시아 국가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덩치가 커 내수를 기반으로 한 성장을 꾀하면 된다. 하지만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은 내수 확대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에 끌려가면 두 나라와 얽혀 있는 한국도 당연히 끌려가게 된다. 그래서 아시아 국가들은 머리를 맞대고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일본·한국은 모두 미국의 전략 구도에서 체스게임의 말(棋子)에 불과하다. 미국이 3개국을 체스 판의 어느 자리에 놓느냐는 각국의 전략적 가치를 고려해 결정할 것이다.”

-동유럽발(發) 외환위기로 서유럽 금융기관의 부실이 우려되고 있는데 위기가 어디까지 확산될 것으로 보나.
“동유럽 국가에 사회 혼란이 발생할 수 있고, 서유럽 금융기관이 영향을 받으면 그와 연계된 미국 은행들도 타격을 받아 미국 지방정부의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10년 전 인도네시아가 무너지고 사회 혼란이 확대돼 아시아 경제위기로 이어진 것과 유사하다. 유럽과 미국의 은행 부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10조 달러가 필요하다. 그래야 은행들의 도산을 막을 수 있다. 위기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5∼10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태가 어떻게 흐르든 각국은 ‘화폐 주권’을 부분적으로 상실할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쑹훙빙의 예측들이 적중하자 중국 언론은 ‘금융위기의 예언자’라는 칭호를 불였다. 국영 CC-TV의 간판 대담 프로인 ‘면대면(面對面)’에도 출연했다. 그는 베이징 한국 영사관 맞은편에 위치한 정부 산하 경제연구기관 ‘환구재경연구원(環球財經硏究院)’ 원장으로 일한다. 쑹훙빙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니다. 건물의 7층 절반을 쓰는 연구원은 마치 증권사 사무실 같았다. 쑹은 수십 명의 애널리스트가 만든 자료들을 활용해 세계경제를 분석·예측하고 있다.

9월까지 정크본드가 발목
-당신은 금융위기 단계를 ‘지진(제1단계)→금융 쓰나미(제2단계)→화산 폭발(제3단계)→빙하기(제4단계)’로 나누고, 현 단계를 ‘금융 쓰나미’라고 진단했다.

“‘금융 쓰나미’는 이르면 3월 혹은 4월에 올 수 있다. 가장 확실한 신호는 씨티은행과 BOA의 파산 신청이나 국유화다. 부실채권이 증가해 상업은행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금값이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 제3단계에서 미국은 경제난을 타개하려 국채를 대량 발행하고, 그것이 실물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 이때 달러화 기피현상이 발생하면 달러화 평가절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빙하기에 들어선다.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모든 나라의 경제가 장기간 쇠퇴의 늪에 빠질 것이다. 이번 위기는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 폐지 후 38년간 누적돼 온 문제가 터진 것이다. 화폐가치가 떨어지면서 연 15% 정도의 수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다.”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 국유화되는 시점이 미국 경기의 바닥이라고 보는가.
“두 은행은 파산 일보 직전이다. 이전에 20∼30달러 하던 씨티은행과 BOA의 주식이 지금은 2∼3달러 선이다. 이런 상황은 프레디맥과 패니메이의 주가 폭락 때와 유사하다. 4월부터 9월까지 민감한 시기가 될 것이다.”

-세계경제가 언제쯤 좋아질까.
“상업은행 국유화가 진전되고 몇 달 동안 정크본드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9월 말까지 정크본드 비율이 20% 이상(현재 4.5%)으로 뛸 수 있다. 그럴 즈음 몇몇 국가나 지방정부가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회복은 U-패턴이나 V-패턴이 아니라 ‘L-패턴’이 될 것이다.”

(‘딱 30분간’으로 잡은 인터뷰 시간이 지나자 쑹훙빙의 개인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수행비서의 전화가 계속 울렸다. ‘몇 가지만 더 묻겠다’는 요청에 수행비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쑹은 “괜찮다”며 인터뷰를 계속했다.)

한·중·일 ‘나 홀로 대응’ 어려워
-중국 경제는 과연 8% 성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수출 감소 때문에 벌써 8% 성장 목표가 위협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수출이 아니라 내수 확대에 힘써야 한다. 주요 수출 상대국인 미국·유럽 시장이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수와 투자가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낳게 해야 한다.”

-당신은 중국의 자본·금융시장 개방을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적당한 개방 시기는 언제인가.
“궁극적으로는 시장친화적으로 될 것이다. 하지만 미 달러화가 국제거래 청산의 화폐로 남아 있고 현재 같은 글로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작다.”

-미 달러화가 쇠퇴한 뒤 위안화가 화폐패권을 차지할 수 있나.
“적어도 10년 안에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력과 문화를 비롯한 다른 분야의 주도권을 갖고 있어야 가능하다.”

-한·중·일 3국이 참가하는 동아시아 통화기금을 만들어 국제통화기금(IMF)처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보나.
“가능성이 매우 크다. 3개국 가운데 어느 나라도 혼자서는 금융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없다.”

월스트리트가 미국 정부를 조종
-당신은 『화폐전쟁』에서 유대계 금융자본의 음모 때문에 금융위기가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근거가 있나.
“그렇다. 미 달러화 발행 권한은 명목상 연방준비은행이 행사하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12개의 지역준비은행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5개 지역준비은행의 지분 구조를 보면 JP모건과 씨티은행이 배후에 있다. 즉 연방준비은행은 사실상 민간은행의 영향하에 있다. 이런 은행들은 실질적으로 유대계 로스차일드나 로스차일드의 대리인 입장을 대변한다. 미 정부가 지금까지 취한 일련의 정책들은 내가 책에서 언급한 ‘이익단체(국제금융업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미 정부가 구제책으로 쏟아 부은 돈 가운데 90% 이상은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을 구하기 위해 쓰였다. 월스트리트가 미 정부를 조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음모론’의 주체는 누구인가.
“세계경제가 일원화됐지만 전 세계 200여 나라가 200여 가지의 서로 다른 화폐를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화 시대에 화폐가 달라 그것이 혼란을 낳고 금융위기를 촉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국제 금융자본이다. 그들이 이번 위기를 ‘계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계중앙은행과 유사한 제도를 만들어 각국의 화폐 발행을 조절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이 금융위기 게임을 배후 조종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다.”

金과 함께 유로·스위스프랑 중시해야
-당신은 위기 상황에서 개인과 정부가 금 보유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중국의 경우 자산을 삼등분해 위안화·금·외환으로 관리하라고 권한다. 외환도 다시 삼등분해 달러화·유로화·스위스프랑화로 관리하도록 권장한다. 이렇게 하면 어느 하나가 하락해도 서로 완충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외환보유액 2조 달러 가운데 대부분을 미 국채로 보유하고 있다. 과연 금 보유 비중을 늘릴까.
“미 국채는 두통거리다. 미국의 국채 발행 규모는 총 10조8000억 달러인데 올해 2조 달러를 추가 발행할 것이다. 그러면 중국으로선 약 1조3000억 달러에 달하는 달러화와 국채의 가격이 동시에 떨어지는 손해를 본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금 보유량을 늘리는 게 핵심이다. 달러화 말고 다른 화폐로 다양화해야 한다. 지금 같은 전환기가 적기(適期)다. 국익 차원에서 석유·천연자원 등을 확보해야 한다.”

-당신은 금본위제와 세계통화(world money)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금융·재정 정책을 통한 경기 대응을 하기 어렵지 않을까.
“이 질문은 경제학자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왜곡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거대 은행자본과 경제학자 케인스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시각은 또 과거의 금본위제를 폐지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생각해 볼 문제는 금본위제가 재산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불편할 수 있지만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반면 금본위제가 아닌 상황에서 은행이 부실 채권을 남발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세계통화를 만들자는 당신의 주장은 이른바 음모론의 기획자들이 내놓을 것이라고 예견하는 ‘세계중앙은행을 만들어 각국의 화폐 발행을 조절하자’는 주장과 비슷하지 않나.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누가 이것을 주동하느냐다. 세계경제가 소수에 의해 조종당하고, 소수의 이익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당신은 책에서 국제 금융자본의 음모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암살당했다고 주장했다. 당신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가.
“(인터뷰 중 처음으로 웃으며) 없을 것이다. 나를 제거하면 그런 ‘음모’가 실존한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쑹훙빙(宋鴻兵·41)은
미국의 대표적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에서 일하던 38세의 쑹훙빙은 어느 날 회사 휴게실의 무료 커피 자판기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무심코 지나칠 일이었다. 곧바로 다른 동료에게 전화해 다른 동(棟)도 그런지 물었다. 과연 그랬다. 그는 그날 저녁 자신의 블로그에 “패니메이가 타이타닉호처럼 침몰 위기에 놓여 있다”는 글을 썼다. 서프프라임 모기지 위기(2007년 2월 말)가 닥치기 6개월 전이었다. ‘예언’이 맞아떨어지자 친구들은 블로그 내용을 책으로 출판하라고 권유했다. 그는 책 이름을 ‘화폐전쟁(貨幣戰爭)’이라고 붙였다.

쓰촨 출신인 쑹훙빙은 랴오닝성 선양의 둥베이(東北)대에서 자동제어학을 공부한 뒤 2년간 고향의 금융업체에서 일했다. 1994년 미 워싱턴으로 건너가 아메리칸대에서 정보관리학·교육학을 공부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사와 세계금융사에 탐닉했다. 석사학위를 딴 뒤 2002년부터 5년간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프레디맥과 패니메이에서 파생금융과 경기예측 모델을 연구하는 시니어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그는 경제를 예측하는 데 지식의 양(量)보다 상식과 논리의 힘이 크다고 주장한다. 경제위기론의 틀도 마찬가지다. 그가 『화폐전쟁』을 쓴 직접적인 동기는 97년 아시아 경제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헤치고 싶은 호기심이었다. 이 책의 판매 기세가 꺾일 즈음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하자 책은 169만 부나 팔린 스테디셀러로 도약했다. 그는 2007년 베이징으로 돌아와 40명의 연구원을 이끄는 환구재경연구원(環球財經硏究院) 원장을 맡아 경제동향과 위기 분석·예측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외부 강연, 언론 인터뷰, 저술 활동을 펼친다. 중국 지도층에도 강의한 적이 있다고 한다.

베이징=써니 리·자유기고가 boston.sunny@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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