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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재계새별]20. 끝. 산내들 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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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가장 부지런한 새만이 먹이를 잡는다. ' 서울역삼동 산내들 그룹 (회장 李祺德.51) 사옥의 사무실 벽마다 걸려 있는 경영방침이다.

산내들 그룹은 창업 10년만에 매출규모는 20여배, 종업원수는 12배나 성장한 기업이다.

80년대 이후 비약적인 성장신화를 이룬 대표적 기업의 하나로 꼽힌다.

현재 5개 계열사를 가진 산내들은 지난해 매출 1천4백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2천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출규모는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성장속도는 눈부시다.

산내들은 李회장이 코오롱그룹 부장이던 88년 부도가 난 건자재업체인 연합인슈를 인수하면서 출발했다.

당시 李회장은 42세로 창업하기에는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니었다.

이 그룹의 성장사 (成長史) 는 '창업 늦깍이' 라 할 수 있는 40대에 '자기 사업' 을 시작한 李회장 개인의 성패사 (成敗史) 와 궤를 같이한다.

李회장이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던 경영자가 되기 위해 월급장이 생활을 청산하고 인수한 연합인슈는 공장의 벽.지붕을 만들 때 사용되는 단열재를 생산하는 회사. 인수 당시 종업원은 50명. 당시 이 회사는 부도로 직원들의 교통비조차 지급하지 못해 거래처 사람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李회장은 그러나 회사 인수 직후 영업부 전 직원과 관리부 부서별로 프라이드 승용차를 1대씩 사주고 월급도 1백% 올렸으며 접대비도 얼마든지 쓰도록 했다.

"접대비 얼마든지 써라" 연합인슈의 시장공략도 '역 (逆) 의 발상' 으로 이뤄졌다.

경쟁사의 관심이 덜한 지방 시장을 우선 공략한뒤 수도권으로 진출한 것이다.

부산.대구.광주에 사무소를 내고 특약점을 모집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최고급 호텔에서 교육을 실시했다.

이후 특약점 사람들은 신바람이 나서 판촉물을 싣고 다니며 공사를 따왔다는 것. 이 회사는 이에앞서 단열 패널에 KS 마크가 없는 상황에서 당시 공업진흥청을 설득해 업계 처음으로 KS 마크를 땄다.

李회장은 기반이 잡히자 한단계 위의 제품을 생산하는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 1백90억원을 들여 고급제품인 글라스울 (유리섬유) 패널을 개발했다.

"우리가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을 넣은 패널을 만드는데 경쟁사는 품질이 좋은 우레탄 패널을 만들고 있었다.

우레탄을 뒤따라 만든다면 계속 2등에 머무를 것이기 때문에 한 단계 고급이라 볼 수 있는 글라스울 패널을 개발했다. "

패널 매출은 해마다 50%정도씩 급증했고 현재 시장 점유율은 30 %수준이다.

연합인슈는 90년 기업공개때 무려 82.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산내들은 패널 사업에서 쌓은 기반을 토대로 92년 ㈜연합식품 (후에 산내들로 개명) 을 설립, 식품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구운 소금 (천일염을 8백도 이상 온도에서 구운 소금) 과 생금 (1천3백도 온도에서 구운 소금) 을 제조, 일반소금보다 2배 가량 비싸게 팔고 있다.

이 소금은 미국 식품의약청 (FDA) 의 인증을 받았다.

㈜산내들은 경기도 용인군 수지지역 아파트와 서울 방배동 빌라 건설등 전문시공업도 하고 있다.

많은 건설사들이 종합건설사로 전환하는 가운데서도 전문시공업체를 고수한 이 회사는 지난4월 필리핀 독립 1백주년 기념 엑스포 건설 공사 (1천1백만 달러) 를 따냈다.

산내들은 계열사 상호변경과 이미지 통합을 거쳐 지난해 5월 그룹으로 출범했다.

'산내들' 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인 산과 내, 들을 아끼는 것처럼 소비자들로부터 아낌을 받는 기업으로 남자' 는 뜻에서 지었다는 것. 이 이름은 그룹이 88년부터 경기도양주군주내면 2만5천평에 운영하고 있는 도시 어린이를 위한 자연학습원 '산내들마을' 에서부터 사용됐다.

산내들 그룹은 기획조정실이 없는 대신 매달 세째 월요일 오전에 열리는 본부장 회의에서 계열사간의 현안등을 조정하고 있다.

현재 5개 계열사 가운데 3개사의 대표이사를 겸하는 李회장의 경영스타일은 사업 시작전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결정된 사안은 무섭게 밀어붙이는 것. 산내들은 채용이나 승진인사에서 철저하게 지연.학연.혈연을 배제해 왔다고 한다.

李회장은 "이때문에 친척이나 동문으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지만 객관적 인사가 그룹을 빠르게 키운 주요한 요인" 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장과정에서의 인재영입과 관련해 "사람은 키우기 나름이기 때문에 현재 인력을 잘 키우면 대기업 인력보다 나을 수 있다" 고도 말했다.

李회장은 "제조업을 기준으로 할 때 40대가 창업하기에 가장 적당한 연령"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대에 창업하면 가족이 먹고 살 정도가 되고, 30대에 공장을 차리면 친척까지 먹여 살릴 수 있으며 40대가 되어야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게 그의 '40대 창업론' 이다.

40대가 돼야 ▶업무와 경제흐름을 알고 ▶신용과 대인관계를 쌓으며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게 돼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연.학연등 철저 배제 ㈜산내들의 대표이사인 오중희 (吳重熙.50) 전무는 연합인슈가 급성장하던 89년 영입됐다.

李회장이 앞만 보고 뛸 때 이를 뒷받침해와 '살림꾼' 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주로 인사.총무를 맡으며 회장의 비전을 직원들에게 전달하고 직원들의 고충을 챙기는등 회장과 직원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92년 식품사업본부를 맡은데 이어 95년 대표이사로 승진하는등 식품부문을 이끌었다.

㈜산내들식품의 이명복 (李明馥.42) 사장은 일찍부터 소금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와 국내 소금 관련 권위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산내들 그룹에 영입되기 전 미농용염식품을 운영하며 가열소금의 일종인 생금을 개발.생산했던 그는 민속침구학회.죽염공업협동조합.가열염협회.발명진흥회 활동도 하고 있다.

그룹의 주력인 산내들인슈 건재사업본부를 맡고 있는 정흥규 (鄭興圭.44) 전무는 주력품목인 글라스울 패널의 개발.생산을 진두지휘했다.

90년 산내들인슈 공장장으로 영입돼 올해 건재사업본부장이 되기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다.

산내들인슈 전자통신사업본부의 심현보 (沈賢輔.47) 전무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25년간 컴퓨터.통신업계에서 일해온 무선통신 분야 베테랑. 산내들그룹은 기존 건자재.식품 사업군 외에 전자통신 사업을 21세기의 주력산업으로 키우기로 하고 연구개발투자와 선진기술 도입, 과감한 전략적 제휴에 나서고 있다.

자체개발한 무선 헤드폰과 무선스피커를 생산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캐나다 커네틱 사이언스사및 캐나다 우주항공국과 공동으로 식별렌즈없는 지문인식 시스템을 세계최초로 개발해 내년 상반기 생산을 준비중이다.

한솔PCS에도 42억원의 자본참여를 했다.

산내들은 지난해 5월 그룹으로 출범하며 2000년 매출목표를 1조원으로 잡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 때는 전자.통신 부문의 비중을 50%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다.

성장과 확대 과정에 있는 산내들은 역동성이 넘친다.

그러나 외형의 빠른 확대가 내용 면에서 부실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이런 점은 李회장도 인식하고 있다.

李회장은 이와관련 "현재 자금조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는 외형 성장보다는 이익 등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갈 방침" 이라고 말했다.

李회장은 지난 10년의 초고속 성장에 대해 "아직 성공한 게 아니라 성공을 향해 겨우 발돋움을 끝내고 날개짓을 하는 단계" 라고 말했다.

내년 4월 창업 10년을 맞는 산내들 그룹의 도약과 비상의 행선지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룹 관계자들은 "李회장과 산내들 사람들에겐 높이 날아보겠다는 의욕이 넘친다" 고 말하고 있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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