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수상 확률 계산한 통계학 교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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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호 10면

아카데미 영화상은 수상 내역 대부분이 자국 영화에 국한되는 미국 영화인의 축제지만 늘 세계 영화 팬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시상식 이전부터 수상작 예측을 둘러싼 평론가들의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데, 올해는 심지어 거짓으로 꾸며진 수상자 명단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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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는 아카데미 수상작을 예견하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코미디 영화는 수상하기 힘들다, 장애인이나 예술가, 혹은 실존 인물을 연기한 주인공은 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확실히 상을 탄다는 등의 속설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유명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는, 1억 달러 이상 수익을 낸, 상영시간이 3시간 정도 되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백전백승이라는 이야기다. 언뜻 떠오르는 영화들로 ‘쉰들러 리스트(1993년 감독상·작품상 수상)’ ‘피아니스트(2002년 감독상·남우주연상 수상)’ 등이 있다. 지난달 국내 개봉한 ‘작전명 발키리’도 앞서 열거된 수상 조건에 꼭 들어맞는 영화다. 명감독(브라이언 싱어)-명배우(톰 크루즈) 콤비가 만들어낸 이 영화는 지금까지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나치 독일의 전복이라는, 아카데미가 그토록 사랑하는 휴머니즘적 소재를 다루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국내 한 유명 영화 주간지는 지난달 아카데미 수상작을 점치며 적어도 절반은 맞힐 거라 호언했지만 감독상·작품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 가운데 하나도 맞히지 못했다. 워낙 쟁쟁한 작품들끼리의 경합이다 보니 단순히 작품성이나 주인공의 연기력으로 우열을 가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아카데미상의 수상 법칙, 결국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별게 다 궁금했던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아카데미 감독상·작품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의 수상을 예측하는 통계적 모델을 만들었다. 미국 오리건대 경영학과의 이아인 파도 교수가 그 주인공.

그는 미 배우조합상과 감독조합상을 수상했는지, 골든 글로브 상을 받았는지, 이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후보작에 올랐는지, 그래서 실제로 수상했는지 등을 변수로 수상작을 점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산 선택모형을 통한 아카데미 수상작 예측’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영국 왕립통계학회지에 싣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올해 초 수상작을 예측했는데 100% 적중했다. 감독상의 경우 대니 보일이 수상할 확률은 80.9%, 여우주연상의 경우 케이트 윈즐릿이 수상할 확률은 91.6%나 됐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숀 펜의 경우 41.8%로 후보자 가운데 가장 높긴 했지만 절대적으로 높은 수치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 파도 교수는 “숀 펜이 올해 배우조합상을 받았으며 네 번이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점, 그가 출연한 영화 ‘밀크’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점 등이 유리하게 작용했으나, 이미 6년 전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점, ‘밀크’가 골든 글로브 상을 받지 못한 점 때문에 확률이 다소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꽤나 과학적인 예측 아닐까. 내년부터는 아카데미상 수상작 예측을 놓고 공짜 점심 내기라도 해야 할까 보다. 비밀은 파도 교수의 홈페이지(odin.lcb.uoregon.edu/ipardoe)에 있다.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가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스탠퍼드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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