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건전한 경쟁 가르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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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외 경제전문가들이나 기관투자가들에게 한국 경제의 장래를 밝게 보는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어김없이 한국이 갖고 있는 '양질의 인적 자원'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주에 만난 한 저명한 국제금융전문가가 "한국 경제는 단기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것이 사실이나 장기전망은 여전히 밝다" 고 평가한 근거도 역시 '양질의 인적 자원' 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한 나는 비관적인 사람중 하나다.

최근 세계적 명성을 지닌 마케팅 리서치 기관과의 면접조사에서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교육" 이라고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초.중.고는 오직 입시준비에 몰두해 있고 대학은 고시학원 또는 영어학원으로 변질됐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교육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능을 가르치기엔 게으르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불어넣기엔 자격이 없다.

정직.팀워크는 고사하고 더불어 사는 기본 소양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지하철역에 열차가 들어오면 내릴 사람들이 먼저 내리고 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양질의 인적 자원' 은 오늘도 내리는 사람들을 밀치면서 타고 있다.

그래서 승강장 바닥에는 가운데로 내리고 양옆으로 타도록 안내하는 화살표가 필요하다.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뭐니뭐니 해도 건전한 경쟁을 가르치지 않는데 있다.

정정당당히 겨루어 이긴 사람은 관용을 베풀고 진 사람은 승복하는 정신이 없다.

성경에 보면 "곡물을 거둘 때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 고 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과 올데 갈데 없는 사람을 위한 온정으로 승자가 가질만한 태도다.

패자는 졌음을 깨끗이 인정할줄 알아야 한다.

경선에서 졌으면 승자를 돕든지, 그게 싫으면 잠잠히 있어야 마땅한 패자들이 설치는 꼴은 정말 보기가 역겹다.

미국의 중.고교에서는 학년말이 되면 영어.사회.과학 등 과목별로 두 종류의 상을 수여한다.

하나는 최우수상으로 우리가 봐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으나 다른 하나는 최발전상 (most improved) 인데 이 상을 받는 학생도 싱글벙글하면서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의 저력이 이런데 있는 것이 아닐까. 자녀의 성적이 50명중 48등에서 21등으로 올라 이 상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진정 기뻐할 준비가 돼 있는가.

경제도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교육이 경쟁력 강화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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