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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과 쉰들러 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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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첫 번째 지지 발언자는 박물관 측에서 나온 여성이었고 두 번째는 랍비였다. 그리고 세 번째가 필자였다. 필자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17년 동안 유대인 자녀교육을 연구했다. 그들이 필자에게 부탁한 이유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족이 박물관 증축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인성교육 전문가로, 인성교육에 관한 베스트셀러의 저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자녀에 대한 인성교육의 본질은 수직 문화며, 이를 형성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효도교육과 고난의 역사교육이라고 설명했다. 유대인이 자녀 교육에 성공하는 이유는 바로 이 두 요소를 잘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물관을 통해 부모나 그 이전 세대의 고난을 체험케 하는 역사교육은 자녀에게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하는 데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정의 구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주변국에 고통을 준 독일과 일본의 만행을 후세에게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박물관을 증축하면 나치뿐만 아니라 일본의 만행에 관한 자료도 전시할 것을 부탁했다.

3·1절을 맞아 우리는 조상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일본의 우익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종군위안부 사건도 서슴없이 합법이라고 주장한다.

유대인이 자신들의 고난의 역사를 세계에 고발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박물관을 지어 세계인에게 알리는 것이다. 미국 전역에는 20여 개의 유대인 대학살 박물관이 있다. 워싱턴의 백악관 근처에 세운 박물관에는 전 세계에서 매년 약 2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물론 주변의 초·중·고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그곳에서 체험학습을 한다. 그 박물관에는 ‘고난의 역사를 기억할 때 희망이 살아난다’는 구호가 있다.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예술을 통한 고발 방법도 있다. 유대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독일의 우익을 잠재웠다. 세계인에게 나치의 만행을 이보다 강력하고 적나라하게 고발할 수 있을까. 유대인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랍비는 필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한국인은 위안부 사건을 세계인에게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습니까?” 그는 이를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면 두 가지 성공을 단숨에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주제 자체가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유발, 세계적인 흥행 대박이 터질 것이고, 둘째 그 여세로 일본의 주장을 단박에 묵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려면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선정성보다 역사적 다큐멘터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증오보다는 용서와 정의 구현, 그리고 화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래에 더 큰 재앙을 막고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다. 한국의 인권단체들이 어려운 형편에 위안부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미국이나 일본으로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당사자들이 죽기 전에 서둘러 대작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나치에게 1100만 명(유대인 600만 명과 비유대인 500만 명)이 죽었는데도 오직 유대인만이 그 고난을 기억하라고 집요하게 세계에 고발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경제적 번영도 고난의 역사를 겪었거나 기억한 세대들이 이룬 기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만큼 고난의 역사교육은 자녀들 인성교육의 핵심이다. 한국에 왜 젊은 실업자들이 그렇게 많은가. 꼭 불경기 탓만은 아닌 것 같다.

현용수 미국 쉐마교육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