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이탈리아 응원도 깬 남자배구의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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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남자배구 금메달은 정말 위대한 승리였다.

경기를 앞두고 연습광경을 볼때 한국이 이탈리아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우승을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우선 이탈리아 선수들의 엄청난 신장이 부담을 주었고 그보다 관중석을 가득메운 1만여 홈팬들의 응원이 한국을 주눅들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팔라카타니아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한국 관계자들은 모두 "오늘 이탈리아에게 이겼다간 다 맞아 죽겠구나" 싶은 공포감을 느꼈다.

하루전 축구결승때 한국 응원석과 보도석, 선수대기석으로 끊임없이 야유와 오물이 날아드는 것을 똑똑히 봤기 때문에 이 공포감은 확신에 가까웠다.

과연 그랬다.

관중들이 일제히 북을 치고 발을 구를 때는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였다.

이런 용광로같은 열기의 한가운데서 한국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냈다.

시상식때까지도 열기는 잦아들지 않았다.

골드메달리스트 한국을 호명할 때도 야유가 계속됐고 홈팬들의 안중에는 이탈리아팀밖에 없는 것같았다.

묘한 것은 3 - 0으로 무참히 패했는데도 홈팀에 대한 야유는 없었다는 점이다.

너무 일방적이어서 속좁게까지 보이는 철저한 응원, 이것이 홈앤드 어웨이에 기초한 유럽 프로스포츠를 유지해가는 힘이다.

우리는 미국의 프로농구나 야구, 유럽축구를 보면서 엄청난 홈승률에 의아함을 느낀다.

그러나 의아함은 한국의 홈개념과 이들의 그것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데서 비롯된다.

배구장에서 본 이탈리아 홈팬들의 응원은 광적일지언정 추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탈리아는 성인배구 세계최강이다.

챔피언 타이틀의 절반은 아무래도 이러한 극성팬들의 공으로 돌려야 할 것같다.

카타니아 (이탈리아)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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