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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은 힘이 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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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단 5분짜리 방송. 그래도 깊이는 50분 교양 강좌 못지 않고, 생생함은 포털의 ‘지식in’과 맞먹는다. 지난 10일 500회를 넘긴 EBS TV ‘지식채널e’(월~금 밤 9시45분·12시)와 18일 600회를 돌파한 MBC 라디오 표준FM ‘도전!무한지식’(월~금 오전 9시5분). 각각 인문학과 과학을 토대로 한 이들 프로그램은 21세기에 요긴한 ‘생각의 힘’을 일깨우며 장수 중이다.

◆ 사람과 세상, 짧은 통찰에 녹여=‘EBS가 생각하는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입니다.’ 홈페이지 소개글처럼 ‘지식채널e’(이하 ‘채널’)는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의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프로그램이다. 1초란 시간이 ‘투수 손을 떠난 공이 배트에 맞고 다시 투수에게 날아가는 시간’인 동시에, ‘우주의 시간 150억년을 1년으로 축소할 때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간 시간’이라고 병렬하는 식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인 ‘채널’은 5분간 하나의 소재를 파고들지만 초점은 언제나 ‘사람’에 있다. “각자가 처한 작은 퍼즐로부터 더 큰 그림을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김현우 PD)가 담겨서다.

‘도전!무한지식’(이하 ‘도전’)은 이에 비하면 훨씬 발랄하다. 정재승 KAIST 교수가 단독 강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도전’은 ‘라면은 왜 꼬불꼬불할까’ 하는 사소한 궁금증부터 식품첨가물 등 시사 과학, 꽃미남 열풍에 깃든 사회심리 등 인문학적 주제까지 두루 헤집는다. “오전 9시대 주 시청층인 주부·직장인에게 삶과 연관되는 정보를 주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은성 PD)답게 호기심에 대한 완결된 답변이 우선이다.

프로그램의 숙성도를 높이는 것은 진행자인 정 교수의 멘트. 연쇄살인과 CCTV,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을 얽은 뒤 사생활 보호와 범인 검거의 딜레마를 질문한다. “과학 지식에 대한 해답은 인문학을 아우를 때 삶의 지혜로 승화될 수 있다”는 소신 때문이다.

◆시청자 사로잡는 5분의 미학=내레이션 없이 자막·영상·음악으로만 진행되는 ‘채널’은 직설적이기보다 은근하다. 포인트는 ‘그러나’의 반전. 이를테면 무미건조한 사실(인간과 바이러스의 사투)을 늘어놓다가 ‘그러나’ 혹은 ‘그리고’란 말 뒤에 의외의 사실(바이러스의 숙주인 인간)을 각인시킨다. 형식에 길들여진 시청자의 경우, 호기심 때문에 끝까지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AGB닐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채널’ 시청자 중 처음부터 끝까지 채널을 돌리지 않고 보는 비율이 55%에 이르러 지상파 프로그램 평균(30%대)을 훨씬 웃돈다.

‘채널’이 여백의 미를 활용하는 데 비해 말이 주 재료인 라디오에서 이는 금기다. ‘도전’이 택한 전략은 스토리텔링과 이색 자료들. 세계적인 분쟁거리가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 거래권을 거론한 뒤 “우리가 마시는 오렌지 주스 한잔에도 이것이 연관돼 있는 걸 아십니까?”라고 묻고 해설하는 식이다. 여기에 관련 뉴스·드라마·영화의 클립과 시민 인터뷰 등을 삽입함으로써 귀를 붙잡는다. 이은성 PD는 “라디오에서 5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라 오히려 다채로운 자료들로 청취자를 끌고, 폭넓은 해설로 지식 마사지를 해주는 짜임새”라고 귀띔했다.

◆포켓 인문학으로 멀티유스=두 프로그램의 성공은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졌다. 23일 ‘시즌 4’가 출간된 『지식e』(북하우스)는 시즌 1~3까지 총 3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북하우스의 김소영 팀장은 “방송을 본 이들이 책을 보고 이를 거쳐 더 깊숙한 지식을 탐색하는 구조로 이어져 기쁘다”고 말했다.

‘도전’도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달)이란 제목으로 지난해 단행본이 나와 과학교양서적으로는 드물게 2만 부 이상 팔렸다. 올 3월과 5월에 2·3권이 연달아 나올 예정이다. 달의 이병률 대표는 “제때 청취하지 못하는 자녀들을 위해 학부모들이 사서 돌려 읽는 경우가 많다” 고 전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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