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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취미·이런 삶] 서각 18년 김석균 제주교육박물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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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8년간 서각(書刻)을 해 온 김석균(56.사진) 제주교육박물관장은 주말만 되면 손에 끌.칼.망치를 든다.

20여년 전 교육감 비서관이었던 그는 휴일이 돼도 집을 떠날 수 없었다. 교육감이 언제 찾을지 모르고,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그를 찾는 전화가 줄을 이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고, 한 마디로 전화기 앞에 연금된 셈이였죠."

그러던 1986년 여름. 서각에 실력있는 친척이 작품 한 점을 보내 왔다.

"시간을 때우기에 괜찮겠다 싶기도 하고 나도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서각에 능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같은 해 20여일간 서울 공무원교육원에서 연수를 받을 때는 매일 저녁 인사동 골목을 찾아 개인 교습까지 받았다. 아예 숙소도 인사동 옆 청진동으로 정했다.

연장을 하나둘씩 갖추고 나무를 다루다 보니 집 한 켠이 어느 새 '목공소'로 변했다. 작업을 하다 끌.칼이나 나무 가시 등에 손을 다치기도 일쑤였다. 처음엔 요령없이 힘만 가지고 일을 하다 보니 어깨 근육통이 생겨 침술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글을 새길 목재는 멀리 인천 등지의 목재상까지 찾아 다녔다. 벚나무나 열대지방에서 수입된 알마시카 나무가 서각엔 제격이라고 한다. 나무 결이 부드러워 다루기 쉬우면서도 변형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를 만들자면 글을 새기는 데만도 짧게는 하루, 길게는 너더댓새씩 걸린다.

그 동안 이처럼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은 100개나 넘지만 모두 지인 등에게 나눠 주고 그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작업하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습니다. 꼭 내 수중(手中)에 둘 필요 없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그가 즐겨 새기는 글은 한글 서예계에서 손꼽히는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77) 동방연서회 회장의 글이다.

'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고,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를 잊는다'(得魚忘筌 得兎忘蹄).

은혜를 저버리는 세태를 풍자한 장자의 외물(外物)편 문구로 뜻과 서체의 아름다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단다.

그는 지난 2월 박물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문화강좌에 서각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10주 과정을 20여명이 수강하고 있다. 다른 서각 전문가가 강단에 오르지만 그도 때론 수강생으로, 보조강사로 강의실에 들어간다.

그는 "아름다운 글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목판에 새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며 "서각을 하면 번민과 갈등이 사라지고 집중력이 강화되는 등 많은 걸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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